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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업데이트: 2022년 1월 7일 | 0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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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크게 주목받기 시작한 블록체인(Blockchain)은 중복거래를 방지하기 위한 작업증명(proof of work)의 합의 메커니즘(consensus mechanism)을 통해 네트워크의 모든 거래를 사방에 흩어진 분산장부에 기록하는 기술이다. 초기 블록체인은 허가받은 소수가 아닌 다수가 참여하면서 공동거대장부의 진정성을 유지시킨다는 측면에서 과거 중앙통제방식의 금융시스템을 분산시스템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보였다. 사실 P2P(peer to peer) 거래의 수단인 혁명적 비트코인(Bitcoin)도 밝게 조명된 공개장부를 여러 곳에 복사해 분산 유지케 함으로써 보안을 지키는 획기적 발상의 블록체인 토대 위에서 제안됐다. 그야말로 중개인 없이, 평소의 신뢰 토대가 없이도 당사자들 간 거래를 가능케 했다는 점에서 혁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모든 참여자들이 거래기록을 공유하기 때문에 연결된 노드의 과반수 이상을 고치지 않는 한 작위적 개입이 어려워 보안상의 이점도 부각된다.


개방성과 투명성, 안전성 확보한 블록체인 다방면에 활용
우리가 블록체인에 열광하는 이유는 크게 몇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우선 중간의 신뢰확인 작업에 소요되는 수많은 과정과 수단을 활용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금융거래만 해도 거래소의 많은 기능이라든지 공증이나 증명, 보험 등 다양한 절차를 과감히 생략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둘째, 모든 기록의 변조 가능성을 최소화시키면서 유지될 수 있다. 금융거래뿐만 아니라 과거 신뢰를 입증하려는 모든 서비스와 관계자들의 노력을 상당 부분 대체할 수 있다. 특히 보석이나 그림의 원산지 증명, 등기서비스나 재산권보호가 취약한 국가들의 경우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기록은 획기적인 개혁드라이브로 간주된다. 셋째, 소비자들의 효용과 편리를 극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과거에는 증명서를 가지고 다니면서 절차 때마다 입증하는 과정을 되풀이했지만 블록체인 기반으로 정보가 공유될 경우 간단한 자기확인 절차만으로 모든 과정을 생략할 수 있다. 투명성과 개방성에 기반을 둔 다수의 참여를 통해 P2P 거래의 장애요소였던 이중성을 연결된 검증절차로 해결할 수 있어 블록체인은 금융 분야뿐 아니라 복잡한 중간개입 및 입증과정에 기초하고 있는 산업 전반에 걸쳐 다양하게 활용될 여지가 있다.


예로 비트코인과 같은 블록체인 플랫폼을 이용하면 국제송금서비스의 경우 즉시 거래가 가능하고, 현금화를 위해 비트코인 거래소가 부과하는 수수료는 은행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개인이 온라인에서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행태도 블록체인 기반의 소액결제(micropayment)가 도입되면 관심 있는 주제들만 선별해 열람하고 건별로 지불하는 사업모델이 가능하다. 개인들의 평소 습관에 기초한 보험서비스나 건강관련 제반 서비스의 질적 제고도 가능하다. 또한 채권, 주식, 특허, 미디어, 개인 창작물뿐만 아니라 혼인신고, 스마트그리드 과금 등에 이르기까지 디지털화가 가능한 모든 자산에서 소유권을 명확히 하고 거래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 실제로 기존 체제와의 상충위험이 적은 기초적인 분야에서는 이미 등기부 등본과 같은 법률서류 및 재산권의 등록과 같은 다양한 용도에서 상용화되기 시작했다.


모든 상거래에 적용 가능한 ‘스마트 계약’으로 발전
이제 초기 비트코인을 가능케 했던 블록체인 기반기술은 본격적으로 모든 상거래에 적용 가능한 ‘스마트 계약’으로 발전하고 있다. 스마트 계약이란 블록체인을 통해 일정 조건을 만족시키면 거래가 자동으로 실행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따라서 계약 이행을 촉구하기 위한 추가적인 관리 비용이나 계약 불이행의 위험이 원천적으로 배제된다. 스마트 계약시스템으로 무단 사용을 원천적으로 방지하거나 분쟁발생 시 특정 시점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손쉬운 근거자료가 될 수 있다. 산업 분야에서도 블록체인 기술은 다양하게 적용 가능하다. 항공기를 생산하는 기업이 블록체인 기반의 SCM(Supply Chain Management) 통합시스템을 도입할 경우, SCM 네트워크 내 모든 기업은 신뢰할 수 있는 실시간 작업현황을 공유할 수 있다. 당연히 각 단계별 추가되는 계약에 따라 부품 공급과 지불 계약이 스마트 계약대로 자동 이행되기 때문에 비용을 줄이고 효율적인 위험관리가 가능해진다. 심지어 분산시스템의 도입으로 효율성과 보안성을 제고하고 선거나 투표관련 고질적 문제해결을 통해 모두가 차별 없이 참여할 수 있게 되므로 전자민주주의(E-democracy)의 구현도 가능하다.


그러나 모든 신기술이나 혁신이 그러하듯 인간사회에 제대로 뿌리를 내리고 접목되려면 상당한 준비와 노력이 필수적이다. 신중하게 따져보면 중개인의 역할을 대체하는 비용절감의 이면에 또 다른 형태의 상당한 비용이 잠재돼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최근 블록체인의 개정판인 ‘이더리움(Ethereum)’의 해킹사건을 보더라도 완전한 분산체제의 위험관리에는 여전히 누군가의 개입이 필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생태계 차원에서 다수의 참여가 소수의 간섭으로 인해 무차별적 피해로 커나가지 않도록 집합적 차원의 지혜가 필요하다. 분산시스템의 출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여전히 필요하며 규제나 감독도 형태는 바뀌겠지만 여전히 필수적인 서비스다.


결론적으로 소위 과거체제(legacy infrastructure)의 발전적 진화문제와 연관된 한계에도 불구하고 개방성과 투명성, 그리고 안전성의 특징을 가지는 훌륭한 대안의 기반으로서 향후 수년 이내로 블록체인은 크게 발전해 다방면에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개인 간 다양한 직거래를 가능케 하는 기반기술로서의 블록체인은 모든 것이 연결된 IoT환경에 적합한 도구이자 기회이다. 모든 것이 연관되면서 모든 경제적 가치의 전달과 거래에 있어 다수에게 다양한 형태의 참여가 허용되고 수직적 통제가 분산적 연관으로 보다 자율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할 것이 확실시된다. 다만 블록체인과 같이 획기적인 변화를 일거에 수용하기 위해선 엄밀한 시장검증과 이를 받아들이고 인류에게 유용한 서비스로 발전시키는 과정은 필수적이다. 결국 시장에서의 공감대 형성을 위한 민간주체들의 출현, 그리고 정부를 포함한 기득권들의 자세 등 다양한 요소들이 맞물려야 블록체인은 비로소 우리 생활을 이롭게 하는 도구로 커나갈 수 있다.

거래 도구

루터가 류트를 연주하면서 가족과 함께 코랄을 노래하고 있다. 프로테스탄트 가정의 롤모델처럼 회자되는 그림이다. 루터는 마흔두 살이던 1525년, 26세의 파계한 수녀 카타리나 폰 보라와 결혼했다. 장남 한스, 장녀 엘리자베스에 이어 막달레나, 마르틴, 파울, 마가레테를 낳았다. 엘리자베스는 어린 시절에 세상을 떴다. 화면의 오른쪽 테이블에 앉은 인물은 루터의 동지이자 비텐베르크 대학 교수인 필리프 멜란히톤이다. 독일의 화가 구스타프 슈팡엔베르크가 1875년(추정) 그린 상상화다.

루터가 류트를 연주하면서 가족과 함께 코랄을 노래하고 있다. 프로테스탄트 가정의 롤모델처럼 회자되는 그림이다. 루터는 마흔두 살이던 1525년, 26세의 파계한 수녀 카타리나 폰 보라와 결혼했다. 장남 한스, 장녀 엘리자베스에 이어 막달레나, 마르틴, 파울, 마가레테를 낳았다. 엘리자베스는 어린 시절에 세상을 떴다. 화면의 오른쪽 테이블에 앉은 인물은 루터의 동지이자 비텐베르크 대학 교수인 필리프 멜란히톤이다. 독일의 화가 구스타프 슈팡엔베르크가 1875년(추정) 그린 상상화다.

탐미주의자 레오 10세

교황 레오 10세(1475~1521)는 지난 회에 언급했던 로렌초 데 메디치의 둘째 아들이었다. 뚱뚱하고 시력이 안 좋았으나 머리 회전은 빨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렌초는 차남을 성직자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일찌감치 세워 교회에 봉헌했다. 아이가 일곱 살 때였다. 적장자에게 가문의 수장 자리를 잇게 하고 차남을 성직자로 만드는 것은 당대의 명문가에서 드물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로렌초의 주도면밀한 계획은 그 이상을 원했다. 메디치 가문이 세속과 교회의 권력을 모두 장악하는 것, 다시 말해 양손에 떡을 들려는 야심이었다. 고조부의 이름을 이어받아 ‘조반니’로 불렸던 차남은 고작 열네 살이던 1489년 부제급 추기경에 서임됐으며 3년 뒤 승격해 로마의 추기경단에 입성했다. ‘메디치’라는 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1513년 3월11일, 바티칸의 콘클라베(Conclave)는 마침내 그를 교황으로 선출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피렌체의 시민들은 열광했다. 폭죽을 터뜨리며 나흘간 축제를 벌였다. 술 취한 사내들이 거리를 몰려다니며 “파파 레오네!”를 외쳐댔다.

레오 10세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예컨대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1466~1536)는 그를 친절하고 인간적이며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호평했다. 물론 이는 ‘전쟁 교황’으로까지 불렸던 전임자 율리우스 2세의 호전성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나온 표현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에라스무스는 레오 10세가 보여줬던 학문과 예술에 대한 장려, 다분히 거래 도구 쾌락주의자였던 면모를 긍정적으로 바라봤던 것 같다. 지금의 우리는 교황을 ‘엄숙하고 경건한 지도자’로 여기는 경우가 많지만, 과거의 교황들에게 이런 잣대는 의미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특히 레오 10세는 ‘인생을 즐기자!’를 모토로 삼았다. “낙천적이고 오락을 좋아하고 가문 특유의 능력을 소유했으나 고통을 피하려 했다”(G. F 영 )는 표현에서도 드러나듯이 ‘한량 기질’이 다분했다. 이런 측면에서 독일의 역사가 레오폴트 폰 랑케(1795~1886)의 평가는 참고할 만하다. “최초의 이탈리아어 비극이 공연된 것은 그의 앞에서였다. 최초의 이탈리아어 희극도 마찬가지였다. 레오의 연회장과 미술관, 예배당은 라파엘로가 만든, 인간의 아름다움을 이상적으로 묘사한 작품들로 가득했다. 그는 음악에 열광했다. 궁에서 음악이 들리지 않는 날이 없었다.”()

‘꽃의 도시’ 피렌체에 비한다면 로마는 폐허의 쓸쓸함이 감도는 도시였다. 과거는 찬란했으되 현재는 황폐했다. 그곳에 다시 활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레오 10세는 정치에 별 관심이 없었던 반면에 예술에는 완전히 몰입했다. 게다가 그에게는 마르지 않는 화수분이 있었다. 가문의 재력뿐 아니라 교황청의 재산까지 온전히 그의 수중에 있었다. ‘한량 교황’은 메디치의 후손답게 수많은 예술가들을 로마로 불러들였다. 로마를 예술로 부흥시키려는 시도는 율리우스 2세 때 시작됐지만 레오 10세는 더욱 가속 페달을 밟았다. 아르놀트 하우저가 에서 언급했듯이, “브라만테와 미켈란젤로, 그리고 드디어 라파엘로가 로마에 상주하면서 교황을 위해 능력을 제공했던 율리우스 2세 치하”에서 로마의 문예부흥은 막을 올렸고, “레오 10세 치하에서 절정”에 달했다. 이 시기에 미켈란젤로는 거의 전적으로, 라파엘로는 상당 부분을 바티칸을 위해 일했다. 특히 레오 10세가 끔찍히 아꼈던 예술가는 아름다운 거래 도구 외모를 지닌 라파엘로였다. 레오 10세의 초상화를 그릴 수 있었던 화가는 라파엘로뿐이었다.

돋보기를 썼던 미식가, 탐미주의자, 거의 모든 장르의 예술을 애호했던 레오 10세는 교황청을 치장하는 것 외에도 도로망을 확충하고 성당을 재건축하기 위해 금고 문을 활짝 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성대한 프로젝트는 성 베드로 대성당 재건축이었다. 당시의 대성당은 지어진 지 1000년이 넘어 상태가 좋지 않았다. 역대 교황들이 비용 탓에 망설였던 재건축을 율리우스 2세가 시작했고(1506년), 그 프로젝트는 레오 10세에게로 이어졌다. 당연하게도 탐미주의자의 욕망이 불타올랐다. 엄청난 역사(役事)를 위해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으며, 결국 교황청의 금고는 서서히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마르지 않을 줄 알았던 화수분이 ‘돈 가뭄’의 신호를 계속 보내왔다. 레오 10세는 이 지점에서 특단의 방법을 강구했는데, 그것은 매우 비정상적이며 파렴치했다. 그는 ‘면벌부’(Indulgentia)를 남발하기 시작했다.

루터의 도시 비텐베르크(Wittenberg)

망치를 든 루터가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면벌부를 비판하는 95개조를 게시하고 사람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벨기에 출신의 화가 페르디난트 포웰스가 1872년 그린 상상화다.

망치를 든 루터가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면벌부를 비판하는 95개조를 게시하고 사람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벨기에 출신의 화가 페르디난트 포웰스가 1872년 그린 상상화다.

‘역사의 라이벌’이라는 말이 있다. 역사를 하나의 드라마로 바라보면서 대립되는 두 인물을 돋을새김하는 수사법이다. 그런 맥락에서 레오 10세의 라이벌은 마르틴 루터(1483~1546)였다. 독일의 소도시 아이슬레벤(Eisleben)에서 태어난 루터는 레오 10세보다 여덟 살 아래다. 원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에르푸르트(Erfurt)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으나 22세 때 삶의 방향을 바꿨다. 1505년 7월 초순, 부모를 방문하고 학교로 돌아오다가 엄청난 천둥과 폭풍우를 만났고, 두려움에 떨던 루터가 성 안나(마리아의 어머니, 거래 도구 예수의 외할머니)에게 자신을 지켜달라고 기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때 루터는 수도자의 삶을 서약했다. 물론 진위를 확인하긴 어렵다. 루터의 전기나 평전 어디에나 나오는 이야기지만, 왠지 과장된 것일 수 있다는 의혹을 떨치기 어렵다. 다메섹으로 가던 바울이 경험했다는 신약성서의 이야기와도 구조가 흡사하다. 하지만 ‘꾸며낸 스토리’로 폄훼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짐작컨대 그는 이미 수도자의 삶을 염두에 뒀을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루터가 집에 머물면서 부모에게 자신의 염원을 털어놨고, 이로 인해 아버지와 심한 언쟁을 벌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2주 뒤 루터는 서약을 지켰다. 에르푸르트의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에 들어가 수도자의 삶을 시작했다. 1507년 사제 서품을 받아 첫 미사를 집전했다. 이듬해에는 비텐베르크(Wittenberg)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작센의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1463~1525, ‘프리드리히 현공(거래 도구 거래 도구 賢公)’으로 불림)가 1502년 설립한 대학이다. 선제후는 이 신설 대학을 라이프치히 대학에 버금가는 명문으로 키우길 열망했고 신학부의 학장으로 요한 폰 슈타우피츠(1460~1524)를 초빙했는데, 그는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에서 루터와 밀접하게 지낸 선배이자 스승이었다. 루터가 이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한 것도, 1511년 정식 교수로 부임한 것도 슈타우피츠의 추천으로 가능했다. 우연과 우연은 이렇게 합류해 ‘거대한 필연’으로 이어졌다. 대학이 세워질 즈음 인구 2000명 남짓이던 엘베강 연안의 소도시 비텐베르크, 지금도 인구 5만명을 넘지 않는 이 도시의 이름은 ‘루터의 종교개혁’과 함께 역사책에 깊이 새겨졌다. ‘루터의 도시 비텐베르크’(Lutherstadt Wittenberg)라는 명칭까지 얻었다.

사실 면벌부의 역사는 길다. 11세기에 교황 우르바노 2세는 십자군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이를 활용했다. 면벌을 받을 수 있는 보속 행위는 자선이나 적선, 성당 건축을 위한 기부 등으로 다양했다. 초기에는 나름의 진정성도 있었다. 돈을 내놓는 행위를 뛰어넘어, 고백자가 진심으로 뉘우치는 태도를 보여야 사제는 죄를 용서했다. 하지만 14세기에 들어서면서 금전 거래의 성격이 짙어졌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면벌부를 살 수 있다는 허가였다. 교황 식스투스 4세(1471~1484 재위)는 연옥에서 고통받는 죽은 친척의 처벌을 감해주는 면벌부를 공식화했고 이는 교황청의 막대한 수입으로 이어졌다. 교황청은 그런 자금으로 사치와 향락을 즐겼고 전쟁을 치렀으며 대규모 건축 사업을 진행했다. 그중에서도 레오 10세가 판매했던 면벌부는 악명 높은 사례로 손꼽힌다. 한꺼번에 수천장, 많게는 수만장씩 면벌부를 찍어냈는데 이는 진보한 인쇄술 덕택에 가능했다. 구덴베르크가 마인츠에 인쇄소를 열었던 때(1448년)로부터 50여년이 훌쩍 흘러 있었다. 이제 유럽의 대도시 어디에나 인쇄소가 있었다. 심지어 구텐베르크도 면벌부 인쇄로 상당한 돈을 벌었다.

종교개혁과 코랄(Choral)의 탄생

루터의 종교개혁 발발지인 비텐베르크 교회. 프리드리히 현공이 비텐베르크에 신도시를 건설하던 시기에 지어졌다. 독일어로 슐로스키르헤(Schlosskirche, 영어로 옮기면 Castle Church)로 불린다. 예배뿐 아니라 비텐베르크 대학의 강의실로도 사용됐다. 애초에는 성당이었으나 1524년에 루터교 교회로 바뀌었다.

루터의 종교개혁 발발지인 비텐베르크 교회. 프리드리히 현공이 비텐베르크에 신도시를 건설하던 시기에 지어졌다. 독일어로 슐로스키르헤(Schlosskirche, 영어로 옮기면 Castle Church)로 불린다. 예배뿐 아니라 비텐베르크 대학의 강의실로도 사용됐다. 애초에는 성당이었으나 1524년에 루터교 교회로 바뀌었다.

알려져 있듯이 루터는 1517년 10월31일 비텐베르크 교회(Schlosskirche)의 정문에 면벌부 판매를 반박하는 95개 논제를 게시했다. 망치를 손에 든 루터가 못질을 하는 모습이 여러 점의 회화로 전해진다. 물론 실제로 그랬는지는 미지수다. 모두 훗날의 그림들, 말하자면 상상화이기 때문이다. 하여튼 분명한 것은 루터가 95개 논제를 소량이나마 인쇄해 배포했다는 사실인데, 당시 그는 이 유인물의 파괴력을 미처 짐작하지도 못했다. 불과 8주 전에도 스콜라 신학을 반박하는 논제를 배포한 적이 있었으나 그때는 별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95개 논제는 그야말로 폭발했다. 아마도 ‘면벌부’를 콕 집어 거론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북독일에서는 면벌부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했다. 알브레히트 폰 브란덴부르크(1490~1545)는 돈으로 성직을 샀다. 그는 교황에게 거액을 내고 마그데부르크의 대주교직을 샀으며, 독일에서 가장 부유한 관구의 하나였던 마인츠의 대주교직까지 차지하기 위해 거래 도구 엄청난 헌금을 약속했다. 이를 위해 독일의 금융재벌인 푸거 가문으로부터 거액의 대출까지 받았다. 결국 그는 재정적 곤란에 처해 교황과 흥정을 벌이게 되는데 그 결론이 참으로 ‘오묘’했다. 양자는 ‘누이 좋고 매부 좋고’를 택했으니, 레오 10세는 그에게 면벌부를 맘대로 팔아도 좋다고 허락하면서 수익금의 절반을 대성당 재건축을 위해 기부하라고 명했다. 이렇듯이 ‘공식적 윤허’를 받은 알브레히트는 돈을 쓸어담기 시작했다. 수도사이자 설교가였던 요하네스 테첼(1465~1519)을 ‘총괄위원장’으로 임명해 곳곳을 순회하며 면벌부를 팔았다. 루터는 95개 논제 중 86조에서 이 탐욕스러운 거래를 정면 비난했다. “가장 부유했던 크라수스(로마의 군인이자 정치가, 당대의 대부호)보다 더 큰 부를 소유한 교황은 왜 가난한 신자들의 돈이 아닌 자기 돈으로 성 베드로 대성당을 짓지 않는가?”(앤드루 페트그리, 에서 재인용)

95개 논제의 파괴력을 예감한 인쇄업자들은 부지런히 인쇄기를 돌렸다. 면벌부 인쇄에서 그것을 비판하는 팸플릿 인쇄 쪽으로 사업 방향을 급선회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그렇게 막을 올렸다. 격정적이면서도 간결한 문체를 구사했으며 글을 매우 빨리 썼던 루터는 단박에 유명인사가 됐다. 95개 논제 외에도 그의 수많은 문건과 저서들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갔다. 루터는 평생에 걸쳐 약 30권을 저술했으며, 이들 책자는 인쇄본으로 약 30만부나 유통됐다. 1520년 간행된 은 초판 4000부를 찍고 그해에만 16쇄를 냈다. 는 1년간 19쇄를 찍었다. 그는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저자였다. 이제 ‘역사’라는 무대에서 배우의 역할이 바뀌었다. 레오 10세는 안타고니스트(Antagonist)로, 루터는 프로타고니스트(Protagonist)로 자리매김했다.

쾌락주의자였던 레오 10세는 감각적 즐거움을 위해 음악에 빠졌다. 물론 그것은 예술의 변치 않는 속성이다. 루터는 달랐다. 일단 그는 다른 종교개혁가들, 이를테면 츠빙글리와 칼뱅처럼 예술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았다. 문학에 대해서는 “기껏해야 신학의 시녀”(아르놀트 하우저, )라고 혹평했으며, 특히 조형예술을 극렬히 반대했다. 하지만 음악은 예외였다. 라는 미완성 팸플릿에서 “나는 음악을 사랑한다. 음악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나는 음악을 신학 다음에 둔다”라고 썼던 루터는 교회에서 다성음악을 노래할 때 테너 파트를 맡았고 류트를 수준급으로 연주했다고 전해진다. 그에게 음악이란 쾌락이 아닌 믿음의 도구였다. 교회의 회중이 한목소리로 바치는 신앙고백이었으며 종교적 가르침의 수단이었다.

루터는 예배 형식을 대폭 바꿨다. 사제가 아니라 신자들 중심으로 개혁했다. 음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때까지 교회에서 노래할 수 있는 이는 사제와 성가대원뿐이었다. 가사는 라틴어였다. 하지만 루터는 독일어로 쓴 코랄(Choral, 루터파 교회의 찬송가)을 적어도 37곡이나 작곡해 회중이 한목소리로 노래하게 했다. ‘코랄’이라는 명칭은 회중이 함께 부르는 ‘합창’의 의미를 강조하려는 의도였다. 이후의 음악사에서 코랄의 영향력은 지대했다. 특히 루터교를 받아들인 중북부 독일에서는 거의 절대적이었다. 루터가 확립한 새로운 교회음악의 전통은 100년쯤 뒤의 작곡가 하인리히 쉬츠(1585~1672), 또 그로부터 100년쯤 뒤에 활약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에게로 이어졌다. 알려져 있다시피 바흐는 독실한 루터교 신자였다. 약 200곡이 전해지는 그의 교회 칸타타들이 코랄에 뿌리를 두고 있음은 당연했다. 루터가 작사·작곡했다고 알려져 있는 ‘내 주는 강한 성이요’(Ein Feste Burg ist unser Gott)는 바흐의 칸타타 80번의 첫번째 합창으로 등장한다. 그로부터 다시 100년쯤 뒤에는 멘델스존(1809~1847)이 종교개혁 300주년을 맞아 작곡한 교향곡 5번의 4악장에서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수원=뉴시스】김지호 기자 = 거래의 익명성을 최대 장점으로 내세웠던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가 범죄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

실명 추적이 어려운 해외 서버를 이용해 성인 음란물 사이트의 결제를 가상화폐로 유도하거나, 마약 거래에 이용되는 사례까지 있다.

인터넷 검색 사이트를 이용해 쉽게 접속한 H 음란물 사이트.

해외에 서버를 둔 이 사이트는 무료로 회원 가입만 하면 운영자나 이용자가 게재한 음란물을 무료로 볼 수 있다.

하루 평균 수천명이 찾는 이 사이트에 게재된 음란물 가운데 인기 게시물은 수만여건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하고 댓글도 수백여건에 달한다.

이용자들은 게시물의 게재 횟수 등 사이트 참여도에 따라 회원등급과 포인트를 얻을 수 있으며, 포인트를 통해 음란물을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에 저장할 수 있다.

사이트 운영에 참여하지 않아도 '후원하기' 기능을 통해 쉽게 포인트를 얻을 수 있다. 결제는 현금이 아닌 가상화폐 비트코인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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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원~1만원 어치의 비트코인을 충전하면 현금 비율의 1대 1로 포인트를 얻고 등급도 올릴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인터넷 검색을 이용해 쉽게 접속한 또 다른 K모 음란물 사이트 역시 비트코인으로 후원을 받아 비슷한 방법으로 운영 중이었다.

이처럼 비트코인 결제로 음란물 사이트를 운영하다가 경찰에 붙잡힌 운영자는 법원으로부터 징역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미국에 서버를 두고 2013년 12월부터 올 4월까지 가입 회원만 121만명에 달하는 음란물 사이트를 운영하던 안모(33)씨는 비트코인을 결제 수단으로 이용, 216비트코인(2017년 9월 현재 8억원 상당)을 벌어들였다.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거래 도구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안씨는 최근 1심에서 징역 1년 6월과 추징금 3억4000여만원을 선고받았으나 양형부당 등의 이유로 항소했다. 검찰이 요청한 비트코인 몰수 명령은 기각됐다.

1심 재판부는 비트코인에 대해 "현금과 달리 물리적 실체 없이 전자화된 파일의 형태로 되어 있다"며 "객관적 기준가치를 상정할 수 없는 216비트코인 중 범죄수익에 해당하는 부분만을 특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하며 기각했다.

또 지난해 6월부터 최근까지 부산 도심에 대마 재배실을 마련해 75차례에 걸쳐 대마 1.25㎏을 1억5000여만원 상당의 가격으로 비트코인을 통해 판매하던 20대들이 검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거래의 익명성이 범죄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전자지갑을 통해 입출금 내역은 확인할 수 있지만 누가 입금했는지는 수사당국에서 확인이 어렵다.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는 실명 확인을 거쳐야 하지만, 실명 인증이 없는 외국 사이트를 통한 거래는 사실상 추적이 불가능하다.

경찰 관계자는 24일 "가상화폐를 보관하는 전자지갑을 추적하기는 어렵고, 가상화폐가 범죄에 이용되면 거래 내역을 토대로 추적이 가능하다"며 "국내에서 운영되는 거래 도구 거래소는 그나마 추적이 가능하겠지만, 외국의 거래소는 사실상 어렵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가상화폐가 양성화되려면 '실명 거래'가 자리 잡아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김종현 아주대 사이버보안학과 교수는 "현재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는 거래의 익명 보장이 원칙이기 때문에 범죄에 이용되고 있지만, 실명확인만 지켜진다면 투명하고 합법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며 "거래를 아예 금지한 중국 사례도 있지만, 국내에서는 투기성으로 가상화폐가 이용되는 만큼 관련 법령이나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비트코인 거래가 처음 시작된 2010년 4월 1비트코인 가치는 1000원에도 못 미치는 100~200원이었지만, 2017년 9월 현재는 5000% 이상 늘어난 약 330만~56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예측 도구 사용

관리자는 예측 도구를 사용하여 팀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추적할 수 있습니다. 예측 도구는 거래 단계 대신 거래 종료 가능성에 근거해 딜을 예측 카테고리로 분류합니다. 이를 통해 귀하와 귀하의 팀은 귀하의 영업 프로세스에서의 위치를 놓치지 않고 거래에 대한 귀하의 지식을 토대로 예측값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이 기능은 영업 사원과 일대일 상담을 진행하는 동안 사용할 수 있으며, 월별 또는 분기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디에 노력을 집중해야 하는지 파악하는 데 유용합니다.

참고: 세일즈 허브, 서비스 허브 프로페셔널 또는 엔터프라이즈 유료 좌석이 할당된 팀 구성원이 예측 도구에 나타나지 않는 경우, 선택한 기간 동안 사용자에게 할당된 거래가 있는지 확인하십시오.

예측 검토(Review a forecast)

  • HubSpot 계정에서 Sales > Forecast로 이동합니다. 을 검토하려면 왼쪽 상단에 있는 팀(Team) 버튼을 클릭하십시오. 맨 위에 있는 드롭다운 메뉴를 사용하여 파이프라인 또는 마감 날짜를 기준으로 필터링하십시오.
  • 개별 사용자별 예측을 검토하려면 왼쪽 상단에 있는 Users(사용자) 버튼을 클릭합니다. 맨 위의 드롭다운 메뉴를 사용하여 파이프라인, 마감 날짜 또는 별로 필터링합니다.
  • 세일즈 허브 프로페셔널 또는 엔터프라이즈 계정이 할당된 사용자가 예측 도구에 나타납니다. 이름 옆에서 다음을 분석할 수 있습니다.
    • 목표 달성(Goal attainment): 사용자의 매출 목표와 관련된 마감한 수익
    • 적용 범위(거래 도구 Coverage): 매출 목표 대비 예상되는 모든 거래의 비율
    • 예측 카테고리(Forecast categories): 각 예측 카테고리의 예측 거래 금액을 모니터링합니다.
    • 예측 제출(Forecast submission): 특정 기간 내에 얼마나 마감될지에 대한 추정치입니다.거래 도구
    • 여기서 사용자에게 할당된 거래를 검토할 수 있습니다. 각 거래가 파이프라인에서 어디에 있는지 평가하고 영업 담당자가 더 힘을 쏟을 필요가 있는 거래를 식별할 수 있습니다.
      • 맨 위의 드롭다운 메뉴를 사용하여 파이프라인, 마감 날짜 또는 예측 카테고리 별로 거래를 필터링할 수 있습니다.
      • 거래 기록을 열려면 거래 이름을 클릭합니다.
      • 표시되는 열을 편집하려면 오른쪽 상단에 있는 열 편집(Edit columns)을 클릭합니다. 표시할 속성 옆에 있는 확인란(checkboxes)을 선택하거나 선택 취소한 다음 저장(Save)을 클릭합니다.
      • 거래를 다음 단계로 이동하기 위해 사용자가 취해야 할 다음 단계를 입력하려면 다음 단계 필드(Next step field)에 메모(notes)를 입력합니다. 여기에 입력하는 텍스트는 거래 레코드의 다음 단계 속성을 채웁니다.

      enter-notes-for-deal

        • 저장(Save)을 클릭합니다.

        예측서 제출(Submit a forecast)

        해당 월 또는 분기에 대한 사용자 정의 예측값을 제출하여 이해 관계자에게 귀하가 해당 기간 동안 마감할 것으로 생각되는 금액의 견적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 HubSpot 계정에서 Sales > Forecast로 이동합니다.
        • 맨 위에서 Close date 드롭다운 메뉴를 클릭하고 예측하려는 월, 분기 또는 연도를 선택합니다. 예측서 제출 열(Forecast submission column)을 편집하려면 선택한 기간이 예측 기간(예: 예측 기간이 매월로 설정한 경우 Last Month, This Month 또는 Next Month 선택)과 일치해야 합니다.
        • 예측 제출 열(Forecast submission column)에서 사용자 정의 예측서를 제출할 사용자 또는 팀 옆에 있는 연필 모양 아이콘을 클릭합니다.
        • 오른쪽 패널에서 예측 금액(Forecast amount) 필드에 금액을 입력합니다.
        • 예상 제출서 기록을 추적하려면 기록(History)을 클릭하여 섹션을 확장합니다.
        • 예측서를 제출할 준비가 되었으면 제출(Submit)을 클릭합니다.

        추가 영업 분석 보고서를 위해 영업 분석 툴의 보고서(reports) 도구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영업 분석 보고서를 이용하려면 오른쪽 상단에서 판매 분석으로 이동(Go to Sales Analytics)을 클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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