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 딜러

마지막 업데이트: 2022년 1월 3일 | 0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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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 딜러

ㄱ 회사는 ㄴ은행과 1억달러짜리 통화스와프 계약을 맺었다. ㄱ회사의 달러화 부채를 스와프 계약 만기 때 엔화 부채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계약 당시 1달러에 대한 엔화 환율은 5년뒤 2백엔에서 1백45엔으로 떨어졌고, 달러 금리는 10%에서 9%로, 엔화 금리는 8%에서 6.5%로 떨어졌다. 달러 가치가 자꾸 떨어지자 ㄱ회사는 스와프 계약을 중도에 파기하고 싶다.

한국금육연수원 姜哲駿 교수는 “여러분이 이런 주문을 ㄱ회사로부터 받았다면 어떻게 할것인가”라고 학생들에게 묻는다. 해약 비용을 구하라는 것이다. 칠판을 응시하던 50명의 초롱초롱한 눈빛는 손익 계산에 분주하다.

한국금융연수원의 국제금융과정 스와프 교실 풍경이다. 이 과정을 이수하는 사람들은 국제금융부 또는 외화자금부에 소속된 젊은 은행원들이다. 대부분 자기네 은행 전문 인력 양성 과정에서 높은 경쟁률을 뚫고 들어왔으므로 일단 자질이 있다고 인정받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주위로부터 부러움과 질시를 받지만 속내는 답답하기 그지없다. 국제금융 전문가의 길에 입문했으나 앞으로 험난 할 도정을 도와줄 지도와 나침반이 없기 때문이다.

금융연수원의 교과 과정은 비교적 체계적이다. 기초 이론부터 국제금융시장 메커니즘, 국제자산 부채관리, 트레저리 오퍼레이션, 외환 딜링, 머니마켓과 채권딜링, 신디케이트론과 국제채권발행 실무, 환율 예측, 프로젝트 파이넌싱과 국가 위험도 측정, 선물 · 옵션 · 스와프와 같은 파생 상품, 관계 법률까지 망라돼 있다.

7주 과정을 이수하는 데 드는 비용은 80만원이다. 비용에 비해 학습 효과는 크지만 이 과정은 입문 단계일 뿐이다. 교육의 질도 싼 교육비에서 드러나듯 교수 1인당 학생이 50명이 넘는다. 은행들은 코레스은행 등 연고가 있는 외국 금융기관에 의탁하기도 하지만 교육 효과는 신통치 않다는 후문이다. 당연할지 모른다. 장사 밑천인 핵심 노하우를 잠재적 경쟁자인 한국 은행들에 전수해 줄 리 없다. 대개 견학 수준에 그친다. ‘인스티튜트 뱅킹 앤드 파이넌스’ 나 ‘더 유로머니 인스티튜트 오브 파이넌스’ 같은 국제 교육기관에 보내기도 한다. 1~5주 연수 비용은 수천 달러이다. 유로머니의 경우 파생 상품 교육 2주에 5천5백파운드(9천달러)를요구한다.

이 연수 과정을 마치는 데는 대략 5~6개월 걸린다. 이후 연수생들은 현업에 투입된다. 일종의 도제 시스템처럼 사수를 모신 조수가 된다. 새끼 딜러는 알아서 눈치껏 배워야 한다. 이 경우는 그래도 행복하다. 한 시중 은행 딜러는 “발령을 받고 오니 책임자 말이 걸작이었다. ‘축하한다. 여기가 네 자리다. 네가 할 일은 이것이다. 잘해 봐라’가 전부였다. 독학을 할 수 밖에 없었고 연수다운 외환 딜러 연수를 받지도 못했다.”

우수 인력 스카우트해도 효과없어
투자 성과가 축적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순환 보직제로 2~3년 뒤 새로운 사람이 오면 다시 시작이다. 시중 은행의 한 딜러는 “5년 전에 이미 옵션 거래를 한 실적을 문서철에서 발견한 적이 있다. 당시 얼마나 많은 연구와 노력 끝에 거래가 성사되었겠는가. 그러나 그 노하우는 지금 온데간데 없다.” 시스템화가 되어 있지 않다 보니 인력 개개인이 가진 노하우가 조직 차원으로 끌어올려지지 않고 있다. 또 다른 시중 은행의 한 딜러는, 우수한 인력을 스카우트해도 큰 효과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컴퓨터 소프트웨어 같은 인프라가 극히 취약하기 때문이다.

국제금융 인력의 상징적 존재인 딜러는 구비 요건이 많이 따라붙는 직업이다. 국제금융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기본이고 언어와 컴퓨터 장벽을 돌파해야 하며, 무엇보다 순발력과 과단성이 중요하다. 하루 시세 차익을 쫓는 스팟딜러의 경우 30대 중반만 돼도 중늙은이 취급을 받는다.

그러나 국내 은행들은 위험을 안고 일하는 이들에게 외국 은행과는 달리 이렇다 할 보상을 해 주지 않는다. 한 은행의 임원은, 보수적이고 형평이 강조되는 현실에서 인센티브 제도를 시행하는 것은 무리라고 밝힌다. 한 외국계 은행의 부장은 “보상 없이 위험을 적극적으로 떠안으라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과 같다”고 꼬집는다.

국내 은행 국제금융 분야는 누구라 할것 없이 걸음마 단계지만, 1인자로 산업은행을 꼽는 데는 별 이견이 없다. 다음은 도토리 키재기 식이지만, 지난 2~3년 동안 투자에 열을 올린 제일 · 조흥 은행이 앞서고 외환은행이 그 뒤를 바짝 뒤따른다.

국내 은행들은 자체에서 사람을 기르는 한편 고급 인력을 영입하는 양동작전을 펼치지만 고전을 면치 못한다. 핵심 기술을 얻기 어렵다는 이유가 크지만, 국제금융 분야를 어떻게 끌고가며 그 과정에서 인재 양성을 어떻게 해야한다는 체계적인 밑그림이 없는 탓이다. 이렇게 우왕좌왕하는 현실은 지금 아무것도 할 수없다는 무력감에서도 싹튼다. 금융 자율화 · 개방 계획이 추진되고 있지만 아직도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이를 딜러들은 집을 짓고 싶은데 벽돌이 없다는 표현으로 자조한다.

국내 은행들은 국제금융 분야를 떠오르는 신천지로 인식한다. 제일은 외환 딜러 朴龍二 상무는 ‘엄청난 사업 기회’라는 표현을 쓴다. 그러나 후발 주자인 한국이 모든 것을 잘할 수는 없다. 금융 연수원 강철준 교수는 “백화점식 경영보다 전략적으로 특화 분야를 집중 공략해야 한다. 여기서 명성을 얻은 뒤 넓혀 가는 것이 효율적이다.”라고 지적한다.■
張熒熙 기자

외환 딜러

세계 금융시장의 1 번지인 뉴욕 월가가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은 새벽 5 시 30 분쯤이다 . 외환 딜러들이 가장 먼저 월가에 진주 , 어둠을 쫓아내고 사무실의 불을 밝힌다 . 유럽 외환시장 오후장에 맞추려면 새벽 6 시부터 일을 시작해야 한다 . 뉴욕 시간으로 새벽 6 시는 런던 시간으로 오전 11 시다 . 이때부터 전화통에 불이 나고 눈코 뜰새 없는 업무가 시작된다 . 월가는 물론 미국에서 이렇게 일찍 일어나 일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 미국에서 가장 빨라야 하고 , 부지런해야 하는 직종이 외환 딜러들이다 .

외환 딜러들은 뉴욕과 시카고 , 보스턴등 미국의 주요도시는 물론 동경 , 홍콩 , 싱가포르 , 런던 , 파리 , 프랑크푸르트등 세계 전지역의 은행 , 증권회사 , 뮤튜얼펀드 , 헤지펀드등 금융기관에서 일하고 있다 . 특히 뉴욕에서는 금융기관이 아니라 , 개인 및 팀을 이루어 세계 증권시장 , 외환시장 , 선물시장등에 투자하는 소수정예의 딜러체제가 산재해 있다 . 은행들은 딜링룸을 갖추고 , 정예 외환딜러를 확보하고 있다 .

국제 외환시장은 증권거래소 , 상품거래소와 같이 일정한 거래장소가 있는 것이 아니다 . 세계의 각은행 또는 기관투자자 , 증권회사를 연결하는 전화와 컴퓨터 온라인망이 곧 시장이다 . 전세계 주요도시 중에서 외환 거래가 활발한 뉴욕 , 런던 , 홍콩 , 동경 등을 외환 센터라고 하는데 , 미국 달러 , 영국 파운드 , 일본 엔 , 독일 마르크 , 프랑스 프랑등 세계 100 여종의 통화가 거래된다 .

국제 외환시장은 24 시간 개장되며 , 그야말로 글로벌 단일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 주식시장은 뉴욕 증권거래소 , 동경 증권거래소와 같은 특정 장소에서 자국 기업의 주식을 주로 거래하지만 , 뉴욕 외환딜러들은 달러뿐 아니라 엔화 , 마르크화 , 중국 위안화를 컴퓨터와 전화로 순식간에 거래한다 .

월가는 외환 딜러들의 진주로 하루가 시작되며 , 뒤이어 채권 분야 딜러들이 7 시께 출근한다 . 시카고 선물 시장이 8 시 20 분 개장하기 때문이다 . ( 뉴욕 시간이 시카고 시간보다 한 시간 빠르다 .) 이어 뉴욕 증권거래소의 딜러 , 브로커 , 파생금융상품 , 헤지펀드등 각종 금융상품을 거래하는 투자은행 펀드매니저들이 줄을 지어 월가의 빽빽한 건물을 채운다 . 9 시 30 분 뉴욕 증권거래소의 오프닝벨이 울리면 맨해튼 남단의 월가는 본격적인 돈과의 전쟁이 시작된다 .

월가에서 근무하는 한 딜러의 하루 일과를 들여다 보자 .

미국에서는 외환 딜러를 외환 트레이더 (currency trader) 라고도 부른다 . 외환딜러 K 씨는 연봉이 100 만 달러 정도로 , 월가에서는 중간 정도다 . 실적이 좋은 해에는 수백만 달러를 벌기도 한다 . 그는 뉴욕에서 한 시간쯤 고속도로를 달리면 나타나는 커네티컷주의 부유층 거주지역에서 산다 .

K 씨의 하루는 새벽 5 시 30 분부터 시작된다 . 눈을 뜨자마자 잠옷차림으로 그는 밤새 동경과 홍콩등 아시아 금융시장에서 집으로 보내온 팩스를 훑어본다 . 통근 열차에서도 투자 리스크를 분석하거나 , 휴대폰으로 동경에 전화를 걸어 당일 매입 또는 매각할 종목과 물량을 협의한다 .

오전 7 시 30 분께 사무실에 도착한 뒤 곧바로 소속회사 외환딜러들을 소집 , 런던 , 동경 , 홍콩을 잇는 4 자 국제 전화회의를 갖고 , 밤새 국제시장의 장세를 점검하고 , 전날 거래의 손익을 검토한다 . 곧이어 본업에 들어가 4 시까지 외환 거래는 물론 파생금융상품 거래를 지휘한다 .

딜러들이 하는 일은 돈 놓고 돈 먹기를 하는 것과 같다 . 환율이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이다 . 이들은 고객이 교환을 의뢰한 돈을 온라인망에 띄워 바꿀 통화의 매입자를 찾는다 . 매입자가 여럿 나타나면 이중에서 가장 유리한 환율을 제시하는 상대를 선택 , 거래를 성사시킨다 . 외환 딜러들은 하루에도 외환을 사고 파는 거래 (trades) 를 2,000 번 정도 한다 . 10 시간을 일한다고 하면 , 한시간에 200 번의 거래를 하는 셈인데 , 이중 고객의 의뢰를 받아 이뤄지는 실제 거래는 2% 에 불과하다 . 나머지 98% 의 거래는 단순한 금융거래다 . 이 98% 의 거래가 외환 시세차를 이용해 돈을 버는 투기성 거래로 , 국제 금융질서의 부정적 측면을 만들어 냈다 .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가 외환 거래를 없애자고 주장한 것은 바로 이런 측면이다 . 그러나 한 사람의 딜러가 하루에도 수천번씩 진행하는 외환 거래는 시장 가격을 형성하는 순기능을 하기도 한다 . 로버트 루빈 미국 재무장관이 “ 외환 거래를 중단하면 투자자들이 말레이시아를 떠날 것 ” 이라고 경고한 것은 후자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이다 .

은행과 펀드의 딜링룸에서 일하는 외환딜러들은 고객의 외환 수급하는 대신하는 본연의 역할 이외에 환투기에도 일조를 했다 . 1997 년 5 월 중순 , 태국 바트화가 떨어질 것으로 판단 , 미국의 헤지펀드와 은행 외환 딜러 조직이 20 억 달러 어치의 바트화를 매각한 것도 이런 역기능 때문이다 .

외환도 상품과 마찬가지로 가치가 떨어질 우려가 있을 때 미리 팔고 , 올라갈 가능성이 있을 때 미리 사는 게 남는 장사다 . 이른바 환차익이다 . 1997 년 12 월 한국 원화 환율이 1 주일 사이에 두배로 폭등 ( 원화 폭락 ) 했을 때 미리 원화를 팔고 달러를 사둔 딜러들은 엄청난 환차익을 남겼지만 , 한국 원화 폭락을 부채질했다 . 외환 거래는 20 세기말에 세계 금융질서를 때론 급격히 동요시키고 있는 필요악으로서 자리매김했다 .외환 딜러

트레이딩룸 /위키피디아

트레이딩룸 /위키피디아

국제 외환시장의 규모는 자본 시장의 국경이 무너지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 1990 년대말 각국간 거래되는 외환 규모가 하루에 2 조 달러였다 . 뉴욕 증시의 하루 주식 거래량의 수십 배나 되었다 . 일본 엔화나 독일 마르크화처럼 비중 있는 통화의 하루 거래량은 2,500 외환 딜러 억 달러에 이르렀다 . 태국과 같이 비중이 작은 나라에서는 바트화의 교환 규모가 하루에 수십억 달러에 불과했다 .

세계 외환 거래는 영국 런던이 최대의 규모를 자랑했다 . 미국을 이탈해 국제적으로 떠도는 달러를 유로 달러 (euro-dollar) 라고 하는데 , 유로 달러의 상당액이 금융 규제가 거의 없는 영국에 집중돼 있었기 때문이다 . 1995 년 4 월 기준으로 런던의 외환 거래액은 하루에 4,637 억 달러였고 , 뉴욕은 2,443 억 달러 , 동경은 1,637 억 달러였다 .

외환 딜러들은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는 것처럼 거래를 한다 . 이들에겐 점심시간이 따로 없다 . 거의 전직원이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샌드위치나 햄버거 , 피자등으로 식사를 한다 . 세계시장의 외환 거래가 점심시간에도 멈추지 않고 움직이기 때문이다 . 눈은 컴퓨터 모니터에 , 귀는 전화기 , 입은 샌드위치에 가있다 . 예컨데 일본 엔화가 급락할 경우 외환 딜러의 책상에는 아침에 자동판매기에서 빼온 커피가 식어 뒹구는데도 입에 댈 시간에 없을 정도로 바쁘다 .

외환 거래는 금본위제도가 붕괴하면서 활성화된 것으로 , 그 연령이 한 세대를 갓 지났다 . 1972 년 이전까지만 해도 각국은 금본위제도를 채택했다 . 그러나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금이 모자랐고 , 더 이상 금에 매달려 통화정책을 운용할 수 없게 되자 , 각국은 금본위제도를 해체했다 . 1990 년대 들어 미국 경제가 장기호황을 지속하고 , 미국 행정부가 달러 강세 (strong dollar) 정책을 취함에 따라 각국 통화가 달러를 기준으로 움직이는 달러본위 (dollarization)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 .

세계 각국의 외환 보유고에는 달러가 가장 많이 보관돼 있다 . IMF 통계에 따르면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의 총 외환보유고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0 년에 50% 였으나 , 1995 년 56.6%, 1996 년 58.9% 로 증가하는 추세에 있었다 . 이에 반해 엔화는 1989 년 18% 에서 1996 년 14% 로 , 마르크화는 외환 딜러 외환 딜러 같은 기간 9% 에서 6% 로 감소했다 .

각국 중앙은행은 자국 통화 가치가 폭락할 때 외환보유고를 풀어 통화를 안정시킨다 . 일본은 1998 년 4 월초 보유외환 2,200 억 달러중 200 억 달러를 풀었고 , 한국과 태국 , 인도네시아 등 97 년 보유고를 풀어 통화를 방어하려고 했으나 , 투기자들을 당해내지 못했다 .

국제 외환 시장에 또다른 격변은 1999 년 1 월로 예정된 유럽단일통화 ( 유로 ) 창설이었다 . 전문가들은 각국 중앙은행이 유로화 보유 비율을 늘릴 경우 엄청난 양의 달러화가 국제시장에 풀려 달러 약세 국면이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고 예고했다 .

외환 딜러들은 각국 통화의 변동에서 이익을 챙겼다 . 그들은 24 시간 움직이는 시장에서 결정적인 순간을 놓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쉴 사이가 없다 . 뉴욕 증권거래소가 하오 4 시 폐장해도 외환시장은 움직인다 . 외환 딜러 K 씨는 하오 4 시부터 6 시까지 부가가치가 높은 파생상품을 연구개발하고 , 이어 저녁을 먹는다 . 저녁 식사 후에도 9 시까지 뉴욕 시장의 하루 물량과 인기 종목을 분석하고 집에 들어가는 시간은 밤 10 시가 되어야 한다 . 집에 들어가서 다음날 새벽 5 시에 일어나려면 잠자기 바쁘겠지만 , 그래도 짬을 내서 잡지를 뒤적거린다 . 외환 시장이 요동치는 날엔 집에 가지도 못하고 회사 근처 호텔에서 새우잠을 자기도 한다 . 월가에서 함께 근무하는 증권 브로커 , 은행가 , 일반 직원들에 비해 더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외환 딜러라는 직종이다 .

외환 딜러의 위력이 국제금융계에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1980 년대였다 . 앤드류 외환 딜러 크리거 (Andrew I Krieger) 라는 외환 트레이더가 뱅커스 트러스트 (Bankers Trust New York) 은행을 도와 한번에 5 억 달러의 이익을 보태준 적이 있다 . 크리거씨가 공격한 통화는 뉴질랜드 달러였다 . 뉴질랜드 중앙은행은 크리거와 뱅커스 트러스트 은행가 재공격하자 , 단기 금리를 인상하겠다고 위협 , 공격을 중단시켰다 . 그후 크리거는 뱅커스 트러스트에서 쫓겨났지만 , 외환 거래의 중요성과 위험이 국제 금융시장에 인식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

조지 소로스와 같이 외환 투기에 성공 , 세계적인 금융가 행세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 반드시 모든 외환 거래자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 소로스의 부하였던 빅터 니더호퍼 (Victor Niederhoffer) 는 자산의 저서 ‘ 투기꾼의 교육 ’ 에서 외환 거래의 즐거움과 돈벌이에 대해 애써 미화했지만 , 정작 자신은 1997 년 바트화 공격에서 크게 실패 , 자신의 펀드를 폐쇄해야 했다 .

성공한 헤지펀드 매니저는 대개 외환 트레이드에서 돈을 번다 . 이들 중 일부가 졸부가 되기도 하지만 , 무수한 사람이 실패 , 패가망신한다 . 그들의 성공과 패가망신은 그들 자신의 문제로 그치지 않고 , 한국과 태국 , 러시아와 같은 한 국가의 흥망 성쇠를 좌지우지한다 .

*사진 출처=클립아트코리아

*사진 출처=클립아트코리아

'증권 및 외환딜러'
증권중개인은 고객을 대상으로 주식·채권 등 현물유가증권에 관한 외환 딜러 영업 및 상담, 상품중개를 실시하거나 국내에 나와 있는 주식형 펀드 등에 대해서 안내하고 가입을 유도하는 일을 한다.

외환딜러는 국제금융시장에서 통용되는 달러, 유로화, 엔화, 위안화, 바트화 등 각국의 화폐와 파생상품을 가장 싼 시점에 사서 가장 비쌀 때 팔아 그 차액만큼의 이익을 남기는 금융전문가이다.

어떤 일을 하나요?
증권중개인은 증권회사에서 주식, 파생상품, 채권 등을 사거나 팔려는 법인이나 일반인을 대상으로 그들이 원하는 거래주문을 받아서 거래를 성사시키는 일을 하며 증권영업업무를 담당한다.

개인투자자 외에 금융기관, 연기금 등 기관 투자자를 대상으로 증권에 관한 전문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고객에게 투자방법을 적절히 조언하며 자산을 늘리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거래소의 시장상황을 모니터하며 투자정보를 검토하고 거래전략을 수립한다. 이외에 고객에게 금융정기간행물, 주식 및 채권보고서, 기업체 출판물과 같은 투자정보를 제공하고 자문한다.

증권회사의 증권중개담당자들은 증권 전문인력과 선물 전문인력으로 구분할 수 있고, 증권중개인은 매매상품에 따라 주식, 채권 등의 전문 분야로 구분되기도 한다.

이들은 주식을 사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주가 상승 가능성이 큰 종목을 추천하고, 주식을 소유한 사람에게는 적정한 시기에 매도할 것을 권유하기도 한다.

채권을 매매하는 사람은 수수료 취득을 목적으로 채권거래를 중개한다. 이들은 채권을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을 중간에서 연결하여 매매를 성사시킨다.

선물을 담당하는 인력은 증권선물거래소 시장에 상장된 파생상품(환율, 금리 등 관련 상품)을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을 거래소를 통해 연결해 매매권유나 자문을 한다. 금융투자협회에서는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이들 증권중개인을 등록·관리하고 있다.

외환딜러는 국제 금융시장의 동향을 분석 및 파악하여 외화자금을 효율적으로 조달한다. 금융기관 외환딜러들은 외화자금의 운용 업무를 담당하며 이에 따른 리스크 관리 업무도 병행한다.

외환딜러는 해당 통화별 예금금리 등 세계 금융정보를 수집하고 국제 외환시장의 동향을 파악하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수집된 정보를 분석해 환율 변화를 예측하고, 이에 따른 손실발생을 막고 이익을 남기기 위해 매매시점을 포착한 후 외환과 외환선물상품을 매매한다.

외환시장이 열리면 모니터에 나타나는 주요 통화의 시세를 보면서 매수 또는 매도 주문을 내며, 이 때 은행이나 기업이 최대의 이익을 낼 수 있도록 차액을 남겨야 한다. 그 외에 외환시장 조건과 전망에 대해 고객이나 상급 관리자에게 알리고 거래를 권고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근무 환경
증권 및 외환딜러는 수시로 변하는 증권 및 외환시장의 가격정보를 확인하는 등 개장 시간에 집중적으로 근무해야 하며, 수익을 내기 위한 긴장감 속에 외환 딜러 근무하기 때문에 업무 스트레스가 높은 편이다.

장 개장 동안에는 시황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식사를 제때에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폐장 이후에도 국제동향을 파악하고, 상품을 분석하는 등의 업무로 초과 근무를 하기도 한다.

■ 증권 및 외환딜러의 근무 환경

*자료 출처: 통계청(2017), 「지역별고용조사」

어떻게 준비하나요?
증권 및 외환딜러가 되기 위해서는 대학에서 경영, 경제, 회계, 무역, 통계학, 금융 관련 학과를 전공해 졸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근에는 경영(MBA), 경제, 회계 분야 석사 이상의 학위를 요구하는 추세이다.

증권중개인은 세계 경제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추고, 경기를 예측하거나 주식, 채권, 금융상품시장을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며 재직자의 경우 금융투자협회에서 주관하는 증권투자권유자문인력, 파생상품투자권유자문인력, 펀드투자상담사 등의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외환딜러는 일반적으로 국내 은행이나 증권사, 선물회사, 대기업 등의 공채시험에 합격해 금융실무능력을 쌓은 후 테스트를 거치거나 추천을 받아 외환 업무를 담당하는 것이다.

외환딜러는 전문적 지식을 갖추는 것과 동시에 세계 경제의 흐름과 경제에 대한 지식, 외국어능력이 필요하다. 회사에 따라서는 직원 채용 후 외환딜러를 할 만한 역량이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은 싱가포르, 홍콩 등에 연수를 보내기도 한다.

관련 학과
경영학과, 경제학과, 금융·보험학과, 국제경영학과, 국제경제학과, 마케팅학과, 정보경영학과, 금융학과, 재무금융학과, 수학과, 통계학, 금융공학과 등

관련 자격
외환전문역(CFES)Ⅰ종/Ⅱ종(한국금융연수원), 펀드투자권유대행인, 펀드투자권유자문인력, 증권투자권유대행인, 증권투자권유자문인력, 파생상품투자권유자문인력(이상금융투자협회), 외환관리사(한국무역협회)

적성 및 흥미
증권중개인
은 국내외 변하는 경제 흐름과 주식시장에 대한 판단력과 분석력, 마케팅 능력이 요구된다. 또한 수시로 변동되는 증권시장의 변화에 적극 대처할 수 있는 균형감각이 필요하며 고객에게 상품을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는 능력과 커뮤니케이션 역량도 필요하다.

외환딜러 역시 경제상황 및 시장변화에 대한 감각, 분석력, 판단력과 결단력 등이 필요하다. 특히 환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국내외 뉴스나 경제 흐름, 금융지표를 발빠르게 체크하고 매매 거래를 위한 전략을 세우는 등 항상 남들보다 앞서기 위해 노력하는 근면성도 요구되며 스트레스 감내력도 요구된다. 이밖에 해외 외환시장 파악을 위해 영어 등 외국어능력도 필수적이다.

경력 개발
증권중개인은 증권회사에 보통 공채로 입사해 일반적으로 증권사무원과 유사하게 ‘주임→대리→과장→차장→부장’의 승진체계를 밟게 된다. 보통 입사 후 일반 관리직이 아닌 영업직으로 발령받아 회사의 현장교육을 받으면서 관련 업무를 배우게 된다.

외환딜러는 일반적으로 은행에 입사해 자체선발과정이나 내부공모 등을 거쳐 외환딜러 업무를 하게 되는데 실제 업무 전 회사내에서 상당기간의 도제식 교육을 통해 실무역량을 기른다. 실무를 수행하기 전, 혹은 재직 중에도 한국금융연수원 등에서 운영하는 연수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하며 각 회사마다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해외 연수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한다.

근무하는 은행 및 금융기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주니어딜러→선임딜러→치프딜러’로 승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증권 및 외환딜러로 금융회사에서 경력과 네트워크를 쌓은 후 자산운용사나 투자자문회사를 창업하기도 한다.

'천천히 제대로 공부법' 자세히 보기 클릭!

직업 전망은 어떤가요?

■ 향후 10년간 취업자 수 전망

*연평균 증감률(%)
*자료 출처=한국고용정보원, 2019 한국직업전망

향후 10년간 증권 및 외환딜러의 취업자 수는 다소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외 금융시장 환경에 따라 증권 및 외환딜러의 취업자 수는 많은 영향을 받을 수 있는데 특히 향후 금리인상 등 글로벌 경제상황에 따라 주식투자층의 이동이 있을 수 있다.

특히 많은 금융회사들이 최근 점포를 거치지 않고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통한 거래, 즉 비대면계좌개설을 유도하기 위해 평생 수수료를 감면하는 정책을 펼치는 등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것은 향후 증권중개인의 취업자 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통계청의 「전국사업체조사」를 보면 증권중개업 사업체 수는 2010년 이후 매년 감소하고 있으며, 금융감독원에서 집계한 증권회사의 점포 수도 2012년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증권중개업 사업체 및 종사자 현황

*단위: 개소, 명
*자료 출처=통계청, 전국사업체조사

■ 투자매매·중개업자(증권회사) 점포 수

*단위: 개소, 명
*매년 12월 기준, 2018년은 6월 기준
*자료 출처='외환 딜러 금융통계월보'. 금융감독원(2018)

비대면 거래증가로 인한 수수료 감소는 증권사들이 영업점포를 줄이고 인력감소로 이어지는 것과 관련 있는데 개인고객들의 전문지식수준이 상승하는 것도 증권중개인의 고용을 다소 감소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또한 인공지능(AI)을 통한 시스템 트레이딩 프로그램이 보다 정교해지고 수익률이 높아진다면 증권중개인의 고용감소를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향후 증권회사에서도 순수 리테일 영업보다는 채권, 펀드, 랩, 해외선물, 장외파생상품 등 다양한 금융상품 판매를 통해 수익을 창출할 가능성이 커질 전망이어서 증권중개인은 다양한 금융상품에 대한 지식을 갖추는 것도 필요하다.

또한 향후 인력채용은 금융시장개방, 고객들의 다양한 요구에 부응하는 투자상담 능력을 갖춘 고도의 전문인력을 중심으로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최근 증권회사를 (희망)퇴직한 이들의 상당수는 늘고 있는 자산운용사, 투자자문회사, 증권자문회사, 또는 핀테크 기반의 디지털 금융서비스 업체로 이직하기도 하는데 이들 업체의 경우 고객대상 맞춤 컨설팅이 업체의 경쟁력일 수 있다.

외환딜러의 경우 금융권 각 업체의 딜링룸에 실제로 트레이딩을 담당하는 인력은 10여명 내외이고 외환거래를 할 수 있는 금융회사도 제한적이어서 향후 외환딜러의 취업자 수는 급격한 변동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외환딜러로 종사하기 위해서는 은행 및 금융기관에서의 경력과 전문 교육이 동반되어야 하므로 신규입직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며 국내에서 외환딜러로 종사하는 사람은 전체 200~300명 수준으로 소수여서 취업자 수 변동 폭이 크지 않을 전망이다.

■ 증권 및 외환딜러의 직업 전망

*자료 출처=한국고용정보원, 2019 한국직업전망

종합하면, 향후 비대면거래 증가 및 수수료 감소로 인한 오프라인 영업점 감소로 증권 및 외환 딜러의 취업자 수는 다소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며, 특히 증권중개인의 취업자 수 감소가 예상된다.

관련 직업
자산운용가, 투자분석가, 투자인수심사원(투자언더라이터), 리스크매니저, 금융관련사무원

관련 정보처
금융감독원: (02)3145-5114, www.fss.or.kr
금융투자교육원: 1588-2133, www.kifin.or.kr
금융투자협회: (02)2003-9000, www.kofia.or.kr

*출처: 한국고용정보원, '2019 한국직업전망'

*에듀진 기사 URL: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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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딜러/외환 팔고사는 ‘순간의 승부사’(새직업 유망직업:21)

"외환딜러만큼 매일매일 승부감을 만끽할 수 있는 직업도 없을 겁니다."외환은행 외화자금부 이진모(35) 대리는 외환딜러를 "승부사"라는한마디로 정의한다. 세계 금융시장을 무대로 날마다 승패가 명확히 드러나는 게임을 하는 고독한 직업이라는 것이다.

이 대리의 하루 외환 딜러 일과를 보면 자기직업에 대한 정의가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외환딜러의 임무는 국제 외환시장에서 외환을 매매해 이익을 남기는 것이다. 이는 물론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그 규모또한 엄청나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까지 자본시장이 완전 자유화되지않아 외환거래가 외국에 비해 활성화되지 못했음에도 이 대리는 외환거래를 통해 한달에 평균 2억~3억원 가량의 매매차익을 올린다. 그가다루는 외환 규모는 하루 보통 7억~12억달러 정도이다.

"하루하루위험을 먹고 산다고할 수 있습니다. 외국에서는 외환딜러들의 보수가실적에 따라 결정돼요. 그래서 외환딜러로 성공하면 엄청난 부를 쌓게되고 실패하면 술주정뱅이로 인생을 마감하게 되죠." 냉혹한 승부의세계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느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다. 세계외환시장은 뉴질랜드 웰링턴에서 가장 먼저 문이 열리고, 시드니 서울도쿄 홍콩 런던 뉴욕으로 이어지면서 24시간 장이 깨어 있다. 각국의금리.물가.경기 등 경제변수와 각종 정치적 변수들, 특히 전쟁이나혁명같은 돌발적 사태들이 시장을 움직이기 때문에 딜러들은 이를 신속히입수하고 정확히 분석해 승부를 건다.

아직까지 실적급이 도입되지않고 있는데도 이렇게 힘든 분야를 직업으로 선택한 이유를 이 대리는우리 외환시장이 아직 초기단계에 있으며 따라서 자신이 개척할 영역이넓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지난 89년 외환은행이 직원들을 대상으로 외환업무 전문요원을 뽑았을 때 그는 1기로 선발됐다. 외환은행이 시작한외환업무 직원 특화는 그후 다른 은행으로 확산됐고, 최근에는 아예채용 때부터 따로 뽑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그만큼 전문성이 요구되기때문이다. 또 무역규모가 커지면서 일반 기업체들도 외환 딜러를 양성하거나 채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우리나라의 외환 딜러 올 1/4분기 외환거래 규모는 1천2백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300% 증가했어요. 자본시장 자유화가 진전될수록 활동 영역은 더욱 빠른 속도로넓어질 것이 분명해요. 야망이 있는 젊은이라면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있는 직업입니다."

외환딜러는 말 그대로 외환을 거래하는 직업이다. 이 동문은 외환 중에서도 달러화와 원화를 다루는 달러-원 스폿 부분에서 일하고 있다. “외환딜러의 역할은 다양합니다. 실물경제에서 이뤄지는 달러화와 원화의 교환, 기업의 환전 수요 충족 등 많은 일을 하고 있죠.” 아침 일찍 출근해 외국 외환시장의 동향을 살피고, 우리나라 장을 통해 거래한다. 우리나라 외환시장은 오전 9시부터 시작해 오후 3시를 기점으로 마감된다. 그러나 외환딜러의 일은 이후로도 계속된다. “우리나라 장이 끝나면 뉴욕, 런던, 홍콩, 싱가포르 등 외국의 주요 외환시장이 시차를 두고 쉬지 않고 계속되죠. 24시간 전화와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는 것이 일상이에요.” 우리나라 장이 마감하면 다시 외국의 외환시장을 주시하고 거래하는 것이 외환딜러의 일이다.

‘24시간이 모자라’는 바쁜 하루. 올해로 5년째 외환딜러로 일하고 있는 이 동문은 지난해 큰 선물을 받았다. 한국 포렉스클럽에서 수상하는 2015년 달러-원 스폿 부문 ‘올해의 딜러’로 선정된 것. 포렉스클럽은 딜링 룸에서 일하는 외환딜러들의 모임으로, 1955년 프랑스에서 발족한 유서 깊은 기구다. 한국 포렉스클럽에서는 매해 투표를 통해 외환 부분에서 가장 두드러진 성과를 보인 사람을 ‘올해의 딜러’로 선정한다. “시장에서 같은 일을 하는 실무자 분들이 주는 상이라 더 뜻깊습니다. 겨우 4년 차 외환딜러에게 주신 상이라 과분하게 받아들이고, 늘 감사한 마음으로 일합니다.”

성공적인 외환딜러가 되고 싶다면

▲ 외환딜러가 되기위해 꾸준히 노력해 온 이용준 동문은
지난 2012년 드디어 외환딜러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출
처: 연합인포맥스)

이 동문이 처음부터 외환딜러로 일한 것은 아니다. 공채를 통해 산업은행 행원으로 들어온 이 동문은 처음에는 여신업무와 파생 회계업무를 맡았다. “행원을 거치지 않고 외환딜러가 되기는 정말 어려워요. 뽑는 인원도 얼마 없고요. 하지만 행원으로 입사해서 보직을 바꿀 수 있단 걸 알았어요. 그래서 행원으로 입사한 후 기회를 노렸죠.” 이 동문은 외환딜러 선배들과 교류하며 정보를 얻었고, 산업은행의 외환딜러 양성 교육에 참가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교육을 받을 수 있어요. 그러나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하지 않으면 어렵죠.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요.” 각종 교육과 OJT 등 여러 관문을 거친 이 동문. 마침내 지난 2012년 외환딜러의 꿈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사회에 비친 모습과는 다른 점도 많았다고. “많은 사람들에게 외환딜러는 멋있게만 보여요. 돈도 잘 벌 것 같고요. 그런데 현실의 외환딜러는 굉장히 힘든 직업이에요.” 이 동문은 금융 시장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외환딜러의 필수적인 자질이라 말한다. “항상 금융시장에 대한 정보를 외환 딜러 찾아야 해요. 그만큼 많은 관심이 필요하죠. 이렇게 수집한 정보로 매 순간 정확한 계산을 해내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외환딜러의 시간은 초 단위로 움직인다. 환율이 수시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만큼 순간순간 느끼는 스트레스도 어마어마하다. “매일매일 초 단위로 손익을 관리하는 직업이라 체력 소모가 큰 것은 물론 스트레스도 엄청나요. 정신적 노동의 강도가 엄청납니다. 이를 견딜 수 있는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이 가장 큰 덕목인 것 같아요.”

금융학적 지식도 중요하다. 시장 정보를 수집해 판단하고, 주어진 자금 안에서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외환딜러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체력과 열정이 외환딜러의 가장 큰 덕목임에는 틀림없어요. 금융 지식과 계산 능력이라는 기본적인 소양을 갖췄다는 전제 하에서요. 외환딜러를 꿈꾼다면 경제학 공부를 꾸준히 하고 경제신문을 읽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이 동문은 이를 통해 장기적인 안목을 기르라고 말한다. “적절한 매수와 매도 시기를 정하려면 시장의 흐름을 읽을 수 있어야 해요. 단기적 관점에서 벗어나 장기적으로 시장 전반을 예상할 수 있는 안목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세요

이 동문은 경영학을 전공했다. 입학 당시만 해도 막연히 ‘자본 시장’에 관심이 있는 정도였다. 이 동문이 구체적인 진로를 정한 데에는 주변의 조언을 귀담아듣고, 구체적인 경험을 해본 것이 큰 역할을 했다. “금융권에서 일하는 선배들을 만나고 조언을 얻으며 금융권에서 일하고 싶다는 목표를 정했어요. 이후에는 증권사, 금융계 공기업 등 인턴 경험을 다양하게 쌓았죠. 공기업 인턴으로 일할 때 ‘금융권에서도 공익적인 측면을 고려하는 곳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금융업에 공공성을 더한 ‘산업은행’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입사하기까지가 쉽지는 않았다. “힘든 적도 많았죠. 하지만 구체적인 목표가 있어서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어요. 지속적으로 금융업에 관심을 가지고 정보를 얻으려 했던 게 큰 도움이 됐어요.”

그래서 이 동문은 후배들에게 많은 사람과 교류하라고 말한다. ‘정보’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이다. “학생 때는 경험도 부족하고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잖아요. 한양대 출신 동문 중에는 전문적인 일을 하시는 분들이 많죠. 그런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는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이 동문은 이에 외환 딜러 외환 딜러 더해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최선을 다하라고 말한다. “학교 성적도 그래요. 자신의 일과 상관없어 보이는 분야라도 좋은 성적을 받아두면 언젠가는 사용하게 될 날이 오더라고요. 많은 정보를 얻으려 노력하고,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할 것. 후배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입니다.”

▲ 이용준 동문은 "많은 선배들을 만나 경험을 듣고 현재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면 꿈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다"고 조언한다.

글/ 이종명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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