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대는 무엇입니까?

마지막 업데이트: 2022년 5월 18일 | 0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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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관 : 망치는 가장 쉽게 알아볼 수 있는 패턴 중 하나입니다. 망치처럼 이 패턴은 하락추세의 바닥에 긴 아래쪽 심지가 있는 촛대로 구성됩니다. 몸은 일반적으로 위쪽 심지가 거의 또는 전혀 없이 작습니다. 망치는 빨간색 또는 녹색일 수 있습니다.

촛대는 무엇입니까?

생각하고 회개하여 가지라!(계 2 : 1 ∼ 7)

날짜 : 2015. 07. 19 글쓴이 : 이성우

: 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 :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 :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 :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 :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 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 : 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

교회는 예수님의 몸입니다 .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교회입니다 . 머리이신 예수님의 생각이 몸인 우리를 통하여 세상에 드러나야 합니다 . 우리교회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일하시기를 소원합니다 .

요즘 , 일과 후에 몇 차례 광교산을 산보하였습니다 . 사무실에서 출발하여 , 영동고속도로 밑을 지나자마자 오른 쪽으로 붙어 , 거북바위로 해서 , 한철약수터 , 약수암을 빙 돌아오는 길입니다 . 빠른 걸음으로 숨이 턱에 차도록 걷습니다 . 걷다보면 그래도 생각할 것이 보입니다 .

산등성이로 난 큰 길을 걷다가 ‘ 길 ’ 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습니다 . 산등성이 숲속으로 난 길은 넓기도 하지만 풀 한 포기 없는 신작로 입니다 . 사람이 제법 많이 다녔다는 증거입니다 . 그 길도 처음에는 풀이 우거진 산등성이었을 것입니다 . 한 사람 두 사람 다니다보니 오솔길이 만들어졌습니다 . 길이 만들어지니 더 많은 사람들이 다니게 되었습니다 . 많은 사람들이 다니다 보니 손이 필요하여 어느 기관에서 관리하는 듯합니다 . 깨끗하게 관리 한 촛대는 무엇입니까? 흔적이 있습니다 . 그래서 다니는 사람이 더 많아 졌습니다 .

그런데 길이 나고 더 많은 사람이 다닌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일은 아닙니다 . 사람들이 너무 많이 다녀서 산림이 파괴됩니다 . 그래서 산림휴식년제 를 도입하여 다니지 못하게 막은 길도 있습니다 . 다니지 말라는 표지판을 세웠습니다 . 그런데 이것으로 안 되어 줄을 쳐서 막았습니다 . 하지만 그것을 끊어버리고 계속 다니는 길도 있습니다 . 다니지 말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 그래서 무지막지하게 나무를 쌓아 방어벽 을 만든 곳도 있습니다 .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어떤 사람은 길을 개척하고 만듭니다 . 이 세상에는 인생의 오솔길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앞서 간 길을 열심히 따라갑니다 . 많은 사람이 다닌 길이라면 안심이 되고 편안합니다 . 문득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어도 남들도 다 하는 짓이라면 애써 위안을 삼습니다 . 그런데 정말로 가지 말아야 할 길을 아무런 생각 없이 따라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 세상에는 문이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고 들어가는 자가 많으나 ‘ 멸망으로 인도 하는 문 ’ 이 있습니다 . 그러나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으나 ‘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 ’ 이 있습니다 ( 마 7:13 ∼ 14). 우리는 어떤 길을 가고 있습니까 ?

길을 보면서 저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 그냥 열심히 땀을 흘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 어느 것이 좋은 산보인지 잘라서 말할 수는 없습니다 . 그러나 한번쯤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아야 합니다 . 한번쯤은 길섶의 이름 모르는 풀 한 포기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 많은 사람이 다니는 길이라고 따라다니면 잘못된 길을 갈 수 있습니다 .

우리는 교회의 길에 대하여 생각하려고 합니다 . 이 땅의 교회가 바른 길을 가고 있는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 다른 교인이 그렇게 산다고 해서 따라가야 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 오늘 말씀은 “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5a) 고 경고합니다 . 교회에 대하여 생각하고 회개하여 가져야 할 것이 있습니다 . 왜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생각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까 ?

오늘 말씀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 1 절 말씀입니다 .

: 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

밧모섬의 요한은 “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 는 음성을 듣습니다 . 이 말씀은 에베소에 있는 교회에 보내는 내용입니다 . 에베소라는 도시는 신약성경의 한 책이름으로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 에베소는 그 당시 세계에서 매우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 로마제국 안에서 로마 다음으로 중요한 도시라고 할 정도입니다 . 인구와 규모면에서 뿐만이 아닙니다 . 이곳은 아시아와 유럽 , 아프리카를 잇는 문명과 교역의 교차로 였습니다 . 로마제국 안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 하지만 부요의 어두운 그림자도 함께 있었습니다 . 이곳에는 세계 7 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데미 (Artemis) 신전이 있었습니다 . 아데미 신전은 현재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보다 4 배나 더 컸습니다 . 더욱이 아데미 여신 은 가슴 (?) 많습니다 . 그만큼 음탕하기도 하였습니다 . 지금 에베소 유적지에는 셀수스 도서관의 유적 이 있습니다 . 학문의 중심지이기도 하였습니다 . 로마로부터 자치권을 인정받은 도시답게 충성심을 보여야 했습니다 . 이곳은 로마황제를 신으로 숭배하는 중심지이기도 했습니다 . 도미시안 황제의 신전 유적이 웅장합니다 . 엄청난 규모를 보여주는 당시의 로마식 원형경기장 이 남아 있습니다 . 에베소는 소아시아에서 가장 로마화 된 도시 였습니다 .

에베소에 복음이 처음 증거된 것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 의해서였습니다 . 사도 바울이 2, 3 차 전도여행 중에 방문하였습니다 . 이 지역에 2 년 간 머무르며 목회하기도 하였습니다 . 디모데가 바울을 이어 교회를 섬김으로 예루살렘과 안디옥에 이어 세 번째 선교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 행 19 장 , 딤전 1:3). 사도 요한도 이곳에서 교회를 섬겼습니다 . 요한에게 남다른 애착이 있는 교회였을 것입니다 .

에베소에 있는 교회를 향한 말씀의 첫 번째 내용은 무엇입니까 ? 먼저 2 절 말씀입니다 .

: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

주님께서 그들에게 하시는 말씀의 첫 번째 내용은 그들의 행위를 아신다는 것입니다 . 여기에서 알다 [ eijdw / 에이도 ] 는 말은 ‘ 보다 ’ 는 뜻이 있습니다 . 즉 , 보아서 안다는 것입니다 . 주님께서 그들의 행위를 눈여겨보셨습니다 . 주님께서 그들의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알고 계셨습니다 . 여기에서 행위 [ e[rgon / 엘곤 2041] 는 사람들이 열심히 노력하며 사는 모습입니다 . 그것은 그들의 수고의 행위와 인내의 행위였습니다 . 그들이 한 수고의 행위 는 무엇이었습니까 ? 그들은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하였습니다 . 그들은 영적 지식과 분별력을 가지고 거짓된 지도자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 그들은 교회를 어지럽히는 거짓 사도들과 거짓 교사들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 그런 사람들이 교회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 또 에베소 교회에는 인내의 행위 도 있었습니다 . 그것은 ‘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 ’ 입니다 . 악한 자들이 발을 들여 놓지 못하게 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있었습니다 . 이미 교회에 들어와 있는 자칭 사도라 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 이들을 시험하여 그들이 거짓말쟁이임을 드러내는 데는 많은 인내가 필요하였습니다 . 거짓을 밝히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 그들은 거짓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방어하였을 뿐만 아니라 , 이미 들어와 있는 거짓을 밝혀내는 일을 하였습니다 . 이것은 참으로 잘한 것이었습니다 .

에베소교회의 칭찬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 3 절 말씀입니다 .

: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

이것은 2 절 말씀에서 수고한 행위와 인내한 행위를 칭찬하는 것입니다 . 그들은 바른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참았습니다 . 견뎠습니다 . 그리고 게으르지 않았습니다 . 당시 사회는 로마 황제를 신으로 섬기도록 강요하였습니다 . 황제를 숭배하지 않는 것은 세상에서 풍요롭게 사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었습니다 . 당시 교회 안에는 예수님의 성육신 , 하나님께서 사람 되신 분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이단들이 있었습니다 . 이러한 가운데서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믿음을 붙잡고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 그런데 에베소 교회는 그런 신앙을 지켰습니다 . 이런 신앙을 주님은 칭찬하셨습니다 .

그리고 에베소교회는 지금도 잘하고 있고 , 앞으로도 계속하여 지켜가야 할 훌륭한 점이 있었습니다 . 6 절 말씀입니다 .촛대는 무엇입니까?

: 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

주님께서는 에베소 교회가 여전히 잘 하고 있고 , 앞으로 계속하여 잘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 그것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 것이었습니다 . 니골라 당은 니골라를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 이들은 구약의 사악한 선지자였던 발람의 행위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 니골라 당에 대하여 다음에 다시 살려볼 것입니다 .) 에베소 교회가 미워하는 니골라 당을 주님께서도 미워하신다고 하십니다 . 지금까지 그렇게 한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하여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 이것은 주님께서 그들이 한 일들을 지지해주시고 칭찬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것입니다 . 주님은 그들을 보고 계십니다 .

이상에서 살펴 본 말씀을 통하여 , 에베소 교회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첫 번째 말씀의 내용은 이것입니다 .

1. 주님께서 알고 계심을 생각 하여야 합니다 .

누군가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복은 ‘ 망각 ( 忘却 )’ 이라고 했습니다 . 우리의 머릿속에 기억들이 지워지지 않고 계속 쌓여있다면 우리는 곧 미쳐버리고 말 것이라는 것입니다 . 잊는 것도 복입니다 . 그런데 또 사람들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다른 사람에게서 ‘ 잊힘 ’ 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 사람들이 기를 쓰며 자기가 한 일을 내세우는 이유는 한마디로 알아달라는 것입니다 . 사람들이 그렇게 떠버리고 자랑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사람들은 이름을 내려고 애를 씁니다 .

오래 전 , 성지 순례 중에 이집트의 시내 산에 올랐습니다 .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산으로 알려진 그 산입니다 . 그런데 그 꼭대기 바위에서 분명히 보았습니다 . 한글로 새겨놓은 이름을 보았습니다 . 수원 아무개 교회라는 교회 이름과 함께 !

그런데 그렇게 자기 이름 알리려고 힘쓸 필요 없습니다 . 하나님이 촛대는 무엇입니까? 모든 것을 다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 내가 한 일을 다른 교인들이 몰라준다고 해서 그렇게 화낼 필요도 없습니다 . 주님께서 분명히 아시기 때문입니다 . 착한 일하고 나서 마음 상하고 삐치기 없기입니다 .

이런 우리를 아시기에 예수님은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

“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 마 10:42)

주님께서 모든 것을 기억하여 주심을 알기에 믿음의 행위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

그런데 , 정말로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신다는 것은 격려의 말씀이기도 하지만 또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 주님은 수고로운 행위나 인내의 행위만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 에베소 교회에 주시는 경고의 말씀이 있습니다 . 4 절 말씀입니다 .

: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

에베소 교회에 말씀하시는 주님께서는 ‘ 그러나 [ ajlla / 알라 ]’ 라고 말씀의 흐름을 바꾸십니다 . 물론 6 절에서 ‘ 오직 [ ajlla / 알라 ]’ 이라는 말로 그들을 계속해서 지지해주십니다 . 하지만 그들에게는 칭찬 받아야 할 행위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 그들에게는 책망 받아야 할 것도 있었습니다 . 여기에서 책망하다 [ kata / 카타 ] 는 말은 지금까지 칭찬한 것과는 정반대되는 일이 그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 주님께서는 칭찬받을 그 많은 행위뿐만 아니라 , 책망 받아야 할 일도 보셨습니다 . 쌀을 씻으면서 뉘를 골라내고 , 돌을 골라내듯이 주님께서는 에베소교회의 잘못한 일을 책망하십니다 . 잘한 것은 잘 한 것이지만 ,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

주님께서 에베소교회를 책망하시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 그것은 그들이 처음 사랑 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 처음 사랑은 처음 예수님을 믿었을 때 가졌던 하나님께 대한 사랑입니다 .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그 사랑입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형제를 사랑하여야 하였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버리다 [ ajfivhmi / 압히에미 ] 는 말이 심각합니다 . 이것은 보내다 , 쫓아내다는 뜻입니다 . 이것은 그들이 가졌던 처음 사랑에서 완전히 단절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 에베소 교회는 너무 열심히 일하느라고 정작 그 일을 맡기신 하나님께 대한 관심이 엷어졌습니다 . 교회에서 거짓 사도들을 분별하여 내느라고 형제를 의심하였습니다 . 그래서 형제에 대한 사랑이 식어졌습니다 . 뜨거워야 할 가슴까지 식었습니다 .

그 심각성을 우리는 5 절 후반절 말씀에서 볼 수 있습니다 .

: 5b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

만약에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을 깊이 생각하고 다시 돌아서 사랑하지 않는다면 극심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 안타깝게도 에베소교회는 이 땅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 터키에 있는 에베소 유적지는 완전히 폐허입니다 . 에베소라는 도시전체가 황폐하여졌습니다 . 지진이 나서 일천 수백 년 동안 완전히 땅 속에 묻혀 있었습니다 . 오랫동안 에베소라는 도시는 역사에서 사라졌다가 우연히 발견되었습니다 . 1863 년에 발굴이 시작되어 현재 고작 15% 정도 발굴하였습니다 . 지진으로 묻혀있던 것이 조금씩 드러나며 그 거대한 면모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 안타깝지만 그것으로 에베소교회의 역할도 끝이 났습니다 . 주님의 심판은 아주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 그들은 그들이 들어야 할 책망을 듣지 않았습니다 .

에베소 교회에 주시는 말씀에서 정리할 두 번째 내용입니다 .

2. 주님의 책망을 듣고 회개 하여야 합니다 .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를 향한 엄중한 경고를 들어야 합니다 . 사랑이 식은 교회는 하나님께 뿐만 아니라 , 세상에도 버림받습니다 . 에베소교회는 분명히 처음에는 서로 사랑하는 교회였습니다 . 처음부터 사랑이 없었으면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 그런데 거짓 교사들을 막아내고 드러내어 밝히는 일을 하다 보니 사랑이 식어졌던 것입니다 . 다른 일에 열중하다가 중요한 것을 잃었습니다 .

“ 보기는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 는 말이 있습니다 . ‘ 무주의맹시 ’ 입니다 . 다니엘 사이먼스와 크리스토퍼 차브리스의 실험입니다 .

흰색 셔츠를 입은 팀 3 명과 검은 색 셔츠를 입은 팀 3 명 등 총 6 명이 동그랗게 모여 서로 농구공을 패스합니다 . 실험 참가자에게 흰 색 셔츠 팀의 패스 횟수만 세라고 합니다 .

실험에서 고릴라 옷을 입은 학생이 천천히 등장해 카메라 정면을 보고 고릴라처럼 가슴을 두드린 뒤 퇴장합니다 . 흥미로운 사실은 실험 참가자의 50% 가 고릴라의 등장을 눈치 채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 흰색 셔츠 팀의 패스 횟수를 세라는 지시를 받았기 때문에 패스 이외의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 심리학 실험으로 유명한 ‘ 보이지 않는 고릴라 ’ 실험입니다 .

교회인 우리가 서로 사랑하여야 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여야 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다 잘 알고 있습니다 . 그런데 조금씩 여러 가지 일에 바빠지면서 그 중요한 일을 잊습니다 . 에베소 교회가 처음 사랑을 일부러 버렸겠습니까 ? 아닙니다 . 그들은 밖에서 들어오는 이단을 막아내느라고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였습니다 . 교회 안에 있는 거짓 사람들을 가려내기 위하여 서로 의심하였습니다 . 결과적으로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고 거짓된 것을 드러냈습니다 . 하지만 더 중요한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

한 때 , 어떤 이단이 교회에 일부러 들어와서 ‘ 산 옮기기 ’ 라나 , 교인을 뭉텅이로 빼내가는 일이 있었습니다 . 그러다 보니 새로운 교인이 등록을 해도 “ 저거 혹시 ○ 천지 아니야 ?” 하는 의심이 생겨서 이상한 눈으로 보았습니다 . 그러다가 제가 회개하였습니다 . 그리고 어떤 사람이라도 그냥 사랑으로 품기로 하였습니다 . 그 이단의 가장 큰 폐해는 교인을 빼내가는 것이 아니라 , 사람을 의심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 우리가 말씀에 굳게 서서 , 예수님의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면 어떤 이단도 이길 수 있습니다 .

교회다움은 바로 사랑의 실천입니다 . 세상이 어수선하고 , 거짓이 횡행하고 , 불법이 극성을 부리기에 사랑이 위축되는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입니다 .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

“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 ”[ 마 24:12 ∼ 13]

하나님의 사랑 받은 여러분 , 그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우리의 삶에서 정의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 그러나 사랑 역시 포기할 수 없습니다 . 그러니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 오늘 말씀이 주시는 핵심 내용이 여기에 있습니다 . 5 절 전반절 말씀입니다 .

: 5a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

주님께서는 에베소교회를 향하여 생각하라고 말씀하십니다 . 여기에서 생각하라 [ mnhmoneuvw / 므네모뉴오 3421] 는 말은 ' 기억을 더듬다 ', ' 회상하다 ' 는 뜻입니다 . 앞만 보고 쉬지 않고 달려가던 것에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 어디에서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를 깊이 생각하여야 합니다 . 진짜로 누구를 위하여 무엇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 그리고 다시 돌아서야 합니다 . 회개하라 [ metanoevw / 메타노에오 3340] 는 말 역시 원론적으로는 ‘ 생각하다 ’, ‘ 재고하다 ’ 는 뜻입니다 . 여기에서 진심으로 잘못된 과거에서 돌아서 마음을 더 좋게 바꿀 수 있습니다 . ‘ 처음 행위를 가지라 ’ 에서 가지라 [ poievw / 포이에오 4160] 는 만들다 , 바르게 행동하다는 뜻입니다 . 거듭 거듭 다시 생각하고 잘못한 된 것에서 돌아서 처음 가졌던 사랑을 다시 실천하라는 말씀입니다 . 주님의 사랑 받은 자로써 어디에 서 있는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 혹시라도 주님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고쳐야 합니다 .

에베소 교회에 주시는 말씀에서 정리할 세 번째 내용입니다 .

3. 주님께서 원하시는 처음 행위를 가져 야 합니다 .

오늘 본문 말씀을 묵상하면 언제나 기억나는 복음성가가 있었습니다 . 그것은 ‘ 죄악의 사슬에서 ’( 배성현 詞 , 서해원 曲 ) 입니다 .

“ 죄악의 사슬에서 괴로움의 눈물 흘릴 때 ” 는 예수님을 알기 이전의 삶입니다 . 이런 사람에게 주님께서 말씀으로 찾아오셔서 영생을 약속하시는 것이 ‘ 처음 사랑 ’ 입니다 .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을 돌아봅니다 . “ 첫사랑의 뜨거움이 식어져서 눈물 흘릴 때 ” 는 너무 바쁘게 살다가 문득 돌아보니 껍질만 남아있는 것을 본 것입니다 . 정말로 주님을 위해서 열심히 일했다고 자부했는데 , 알맹이가 빠진 것을 알아차리고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 우리는 첫 사랑의 뜨거움이 식어진 것을 발견하고 눈물 흘려야 합니다 . 이 문제는 그 어떤 다른 것으로 해결될 수 없습니다 .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기억하고 , 그 사랑을 실천하는 감격만이 영적 공허감을 메워줍니다 .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촛대는 무엇입니까?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 ”( 눅 11:42)

예수님께서는 열심히 십일조를 드리는 종교생활을 꾸짖으신 것이 아닙니다 . 공의와 사랑의 실천이라는 신앙생활을 잃어버린 것을 꾸짖으시는 것입니다 . 우리는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의 그릇이 넓어져야 합니다 . 하늘도 보고 땅도 보아야 합니다 . 열심히 살아가되 가끔은 눈을 들어 하늘도 보아야 합니다 .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 지도 생각하여야 합니다 . 정말로 다시 생각하여야 합니다 . 무엇이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인지를 생각하여야 합니다 . 무엇이 정말로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인지를 생각하여야 합니다 . 그리고 다시 돌아서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 사랑 , 사랑 , 사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에베소교회에 주시는 말씀의 결론은 “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 ” 입니다 . 우리는 들을 귀가 있는 사람입니까 ? 청각이 약해서 소리를 듣지 못하시는 분도 계실 수 있습니다 . 그러나 영적인 귀가 열려 세미한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

무엇이 어디에서 문제인가를 스스로 생각하여야 합니다 . 몸부림치면서 회개하여야 합니다 . 그리고 반드시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 이것만이 각 사람이 또한 온 교회가 사는 길입니다 .

요즘 우리는 교회란 무엇인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다. 절망스럽다. 이유는 간단하다. 교회가 교회로서의 참된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러한 질문에 우리는 절망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절망감은 혼란스러움으로 진화한다. 교회의 모습에 대한 혼란스러움이다. 비정상적인 모습이 정상적인 것처럼 활개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더욱 성경으로 돌아가 성령이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교회의 본질에 대한 가장 적절한 답을 성경 안에서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요한계시록 2-3장의 과거 역사에 실존해 있던 일곱 교회를 향해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경청함으로써 그 해답을 찾아보는 것은 우리에게 신선한 통찰력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에베소 지역에 있는 교회를 향해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 보자.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예수님

에베소교회를 향해 말씀하시는 예수님은 '오른손에 일곱 별을 가지고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로 묘사되고 있다(1절). 계 1:20에 의하면 일곱 별이란 일곱 교회의 천사들(새번역)이고,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들이라고 해석된다.

예수님은 천상적 존재뿐만 아니라 지상의 일곱 교회들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우주적인 교회 공동체뿐만 아니라 구체적으로 지역 교회인 에베소교회를 주관하는 분이시다. 예수님은 교회의 주인이시다. 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소유권을 대신할 존재는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어떤 한 개인이나 집단이 교회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교회는 그 소유권이 예수님께 있으므로 한 개인의 뜻이나 계획이 관철되도록 하는 대상이 아닌 것이다. 소유권이 예수님께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그 인식은 교회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원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촛대는 무엇입니까?

말씀하시는 예수님

그분이 에베소교회를 향하여 말씀하신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은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시는 형식을 취한다. 그것은 에베소교회를 향해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권위가 하나님과 동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권위 앞에 선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느꼈을 두려움을 짐작할 수 있다.

교회에 대한 소유권에 대한 배타성처럼 교회를 주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를 능가할 존재는 교회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담임목사도, 당회도 이 권위를 대신할 수 없다. 모두가 이 권위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서야 할 것이다. 만일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 권위를 대신하려고 한다거나 위임된 권위를 남용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예수님께 도전하는 격이 되고 마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이 말씀의 권위 앞에 엎드려야 할 존재에 예외가 있을 수 없다. 대부분의 경우에 이 말씀을 전하는 주체가 강단에서 목사이므로 목사 자신은 이 말씀을 들어야 하는 대상에서 예외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에베소교회를 향하여 선포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는 목사 자신도 예외일 수 없다. 목사도 그 말씀 앞에 엎드려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슬픈 것은 성도들이 목사에 반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정작 목사 자신은 온갖 병폐적 행위를 일삼으면서도 하나님의 권위를 손상시키는 존재라는 점에 있어서는 매우 너그럽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목사들 자신은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입장이 아닌지를 심각하게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교회 안에서 어떤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목사의 독단적 결정은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될 수 있다. 예수님의 권위 앞에 동등한 입장에 서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예수님께서 교회 공동체를 통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모습일 것이다.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님=칭찬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에베소교회 공동체의 모든 것을 아신다고 하신다(2절).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예수님께서 그 교회를 모른다고 할 수 없다. 이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예수님은 분명 한국교회를 알고 계실 것이다.

예수님께서 알고 계신다고 할 때 한쪽은 환희와 기쁨, 그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두려움과 부끄러움으로 확연하게 갈리고 말 것이다. 한국교회는 어떠할까? 이 대목에서 다들 '나는 예수님께 기쁜 일을 했으니 부끄러울 것이 없다'고 할 것이다.

기준이 없어 보인다. 누구든지 자신은 예수님께 칭찬 받을 일 했다고 만천하에 외쳐 댈 수 있을 것이다. 누구는 초호화 초대형 예배당을 건축해 놓고 나는 예수님 앞에 자랑스러운 일을 했다고 감격해 할 것이다. 그래서 그 기준을 성경을 기준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예수님께서 아신다고 한 것은 무엇일까? 먼저 그것은 그들의 행위, 수고와 인내이다(2a). 이것은 3절에서 쉽게 풀어서 반복 언급되고 있다. 먼저 '인내'는 '너희가 인내를 가지고 있다'라는 문구로 반복되고. '수고'는 '나의 이름을 인하여 견디다'라는 말로 반복된다. 그리고 촛대는 무엇입니까? 그들의 수고는 '피곤해 하지 않는다'는 말과 연결된다(우리말 번역에 '게으르지 않다'라는 번역은 '피곤해 하지 않다'라는 것으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 이 두 단어는 서로 동일한 어근을 가지고 있다. '수고'라는 단어에 해당되는 원어를 음역하면 '코포스'이고 '피곤하다'는 단어의 어근의 음역은 '코피아오'이다).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은 주님을 위해 수고했지만 피곤해하지 않았다. 끝으로 2절의 '행위'는 3절의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었다'라는 것과 연결된다. 그들의 행위는 주님의 이름을 위해 세상의 도전 앞에 끝까지 버티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행위, 수고 그리고 인내는 교회에서 하는 일들을 두고 하는 표현들이 아니다. 그것들은 예수님 앞에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초래되는 모습들에 대한 표현들이다.

2a와 3절의 이러한 의도적 연결의 중간에 2b에서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 자칭 사도라 하는 자들을 시험하여 거짓된 것을 드러낸 것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A(2a)-B(2b)-A'(3절)의 구조를 형성한다. 곧 에베소 성도들의 행위와 수고와 인내의 핵심에는 바로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하고 자칭 사도라 하는 자들을 시험하여 거짓된 것을 드러낸 그들의 행위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행위와 수고와 인내 가운데 그래도 평가할 만한 것들이 바로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않고 자칭 사도라 하는 자들을 시험하여 거짓된 것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악한 자들'이란 도덕적으로 악한 자들이라기보다는 바로 이어져 나오는 '자칭 사도'라 하는 자들을 가리키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자칭 사도라 하는 자들은 다른 말로 '거짓 사도'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러한 자들은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다(참조 고후 11:13-15). 그러므로 분별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들은 거짓된 교훈을 가지고 교회를 어지럽히는 자들이다. 에베소교회 성도들은 바로 이러한 자들을 시험하여 밝혀냈을 뿐만 아니라 용납하지 않았다. 바로 그들의 수고에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그것은 거짓된 가르침을 걸러내고 교회의 순수성을 지켜내는 것이다.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은 결코 쉽지 않은 그 일을 해냈고 예수님은 그들의 수고를 아시고 아낌없이 칭찬하신다.

우리 한국교회는 이처럼 에베소교회가 했던 일 가운데 교회의 순수성을 지켜 내기 위해 잘못된 가르침을 시험하여 분별해 내야 하는 것이 시급하다. 자칭 사도라 하는 자들을 요즘 말로 바꾸어 말하면 자칭 목사라 하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은 거짓된 가르침으로 교회를 어지럽히고 있다.

특별히 기독교 TV에 나와 설교하는 목회자들 중에 어떤 경우에 교회를 어지럽히는 가르침들이 난무한다. 이러한 현상의 결과는 당장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나타나도 눈에 띄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의 가르침을 통해 교회의 순수성을 회복해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예수님이 그 상태를 아시고 그 회복을 원하시기 때문이다.

책망하시는 예수님

다음 4-5절에서는 반전이 일어난다. 이러한 반전은 '그러나'라는 접속사에 의해 예고된다. 그 반전은 칭찬으로부터 책망으로의 반전이다. 책망의 내용은 이러하다: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그들이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것이다(4절). 이러한 단어의 사용에 의해 처음 사랑을 무의식 중에 상실한 것이 아니라 의도적인 유기라고 보인다.

그렇다면 처음 사랑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독자들은 쉽게 그 처음 사랑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라고 단정할 가능성이 많다. 과연 그러한가? 그렇다고 보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에 대한 열정을 상실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본문(2-3절)에 잘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알고 계신다. 그들은 자칭 사도라 하는 자들의 거짓된 가르침을 분별해 낸 자들이다. 이것만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살아 있는 모습이 또 있겠는가? 이들이 하나님에 대한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다. 그렇다면 처음 사랑이란 무엇이겠는가?

이것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 말고 상실했을 가능성이 있는 '처음 사랑'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여기에서 말하는 처음 사랑이란 성도들 사이에 존재했던 사랑을 가리킬 가능성이 많다. 에베소교회 성도들은 올바른 교훈을 세우기 위해 거짓 교훈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사랑 없이 바른 것만을 주장한다면 얼마든지 사랑이 없는 공동체로 전락할 수 있다.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던 형제자매들 간의 사랑을 상실한 에베소교회 공동체의 실상은 예수님께 책망을 받는 처지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처음 사랑을 그렇게 규정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의미를 철저하게 배제할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이들은 매우 유기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하나가 없이 다른 하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힘들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말하는 것을 주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교회 안에서 처음 사랑을 찾아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더 문제는 그러한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이 바른 교훈을 찾는 과정에서 일어난 결과가 아니라는 것에 있다.

한국교회는 차라리 바른 것을 추구하다가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예수님의 이러한 책망을 받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한국교회에 과연 바른 신학이 있기라도 한 것인가? 분명한 것은 한국교회가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던 사랑을 버린 것은 그러한 이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어디에서 떨어졌는가를 기억하고 회개하고 처음 행위들을 행할 것을 촉구하신다(5a). 당연하다.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문제를 그냥 넘어 갈 수 없지 않은가?

여기에서 세 개의 중요한 동사가 주목된다: 기억하라; 회개하라; 행하라. 회개의 행위는 분명하게 어디에서 문제가 발생했는가를 보여주는 과거를 기억하는데서 출발한다. 과거를 기억할 때 회개의 출구를 발견한다. 그리고 처음의 행위들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상상 속에서 회개는 없다. 행동으로 나타날 때 비로소 회개의 열매가 열린다.

그런데 이 문제는 예수님께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나 보다. 예수님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면(이 '회개하지 아니하면'이라는 문구는 두 번 반복되어 강조된다) '촛대를 옮겨 버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5b). 촛대를 옮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촛대는 교회 공동체를 의미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촛대를 옮긴다는 것은 교회 공동체의 정체성을 소멸시켜 버리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곧 처음 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교회로서의 본질을 상실케 하시겠다는 경고이다. 사랑이 없는 교회 공동체는 교회로서의 본질을 갖고 있을 수 없다. 사랑 없는 교회 공동체는 그 자체가 심판일 수 있다.

이러한 예수님의 경고에 대해 한국교회는 자유로운가? 한국교회에 처음 사랑은 버리지는 않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부정적이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교회는 교회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릴 수 있는 위험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처음 사랑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처음 사랑을 버리게 된 것은 에베소교회와는 좀 다른 이유 때문이다. 그것은 바른 교훈을 세우려고 하다가 그렇게 된 것이 아닌 것이 더욱 안타깝다. 차라리 그러했으면 바른 교훈이라도 얻어 위로라도 삼을 수 있을 터인데. 어느새 우리 한국교회에는 교회의 대형화가 큰 경향으로 자리 잡아 버렸다. 그래서 작은 교회들도 대형 교회가 되고자 하는 경쟁 대열에 합류한다.

거의 모든 교회의 시스템이 성도들의 성경적 삶의 증진보다는 교회의 부흥을 위해 존재한다. 대형 교회들은 그들대로 서로 경쟁심을 갖는다. 그래서 더 크고 더 화려한 예배당을 지으려고 한다. 이러한 크고 화려한 예배당 속에서 군중들은 고독해 한다. 역으로 대형 교회는 간섭 받기 싫은 사람들의 천국이다. 사람의 관심이 못 미치니 편안하게 교회를 다닐 수 있다. 그래서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는 예수님의 도전은 이래저래 오늘날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요청이다. 그래서 교회의 대형화는 처음 사랑을 버리게 된 상황을 초래한 중요한 이유이면서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칭찬하시는 예수님

6절은 또 다른 반전이 일어난다. 이 반전 또한 4절의 경우처럼 '그러나'라는 접속사로 시작된다. 이 반전의 내용은 책망에서 다시 칭찬으로 돌아선다. 그래서 칭찬-책망-칭찬의 구조를 이룬다. 칭찬의 내용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했다는 것이다. 이 니골라당은 2:14-15에 의하면 발람의 교훈과 관련된다. 그리고 이 발람의 교훈은 2:20-23에 의하면 이세벨과 관련된다. 곧 니골라당의 가르침은 발람과 이세벨과 같은 인물들이 자행했던 우상숭배와 음행과 관련된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에베소교회가 위치한 에베소라는 도시는 황제 숭배를 비롯한 각종 우상숭배가 성행되었던 곳이었다. 이를 감안한다면 니골라당이란 에베소교회 안에 이러한 가르침을 교묘하게 도입하려 했던 자들이었을 것이다. 특별히 이들이 2:2-3의 거짓 사도와 관련된다면 그들은 우상숭배와 같은 이교적 행위를 적당하게 기독교적 진리와 혼합하려는 시도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예수님은 이것을 미워하신다고 하시면서 이러한 자들의 교훈을 미워한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칭찬하신다.

에베소교회 공동체도 찬란한 이교 문화의 영향하에 있었다. 그리스-로마 시대의 문화적 업적은 오늘날도 널리 인정되고 그 영향은 모든 인간의 생활과 사고방식에 깊숙이 파급되어 있다. 그런데 그러한 문화적 결과물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더럽히려 할 때, 혹은 그리스도의 권세를 침범할 때 그들은 과감하게 그것을 미워한 것이다. 예수님은 바로 그 점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한국교회 안에 기독교 진리와 세속적 물결이 문화라는 이름으로 교묘하게 혼합되어 잠입해 있다. 우리 한국교회는 세상은 무조건 악한 것이고 교회 안은 무조건 선한 것이라는 이교적 이원론에 사로 잡혀 있어 이러한 세속적 문화를 분별할 능력이 취약하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세속적 문화를 접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것을 등지고 살 때 결과는 둘 중의 하나이다. 완전 고립된 삶을 살게 되든지, 아니면 세속적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므로 그것에 저항할 방법에 대한 무지로 말미암아 완전히 물들게 되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

어쩌면 우리 한국교회는 이 양 극단의 경우를 모두 경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문제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주권을 내세워 그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그러한 세속적 문화를 활용하는 데 취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분별하는 시금석이 되는 것이다. 그러할 때 니골라당의 교훈 같은 교묘한 경우들을 분별해 내어 내칠 수 있는 내성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이상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만 하시는 말씀이 아니다. 그것은 지상의 모든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말이 아니라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귀가 있는 자들이라면 누구든지 이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누구든지 예외가 있을 수 없다. 사도들도, 목사들도, 장도들도, 신학교 교수들도 예외 없이 이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기는 자에게는…

이기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로부터 과실을 먹게 하실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직접 약속하신다(7절). 여기에서 '이기는 자'라는 문구는 왜 등장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요청하고 있는 것들이 바로 치열한 투쟁 가운데서 얻어지고 지켜질 수 있다는 의식 때문이다.

그냥 적당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에베소교회 성도들은 이기느냐 패배하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예수님의 경고의 말씀에 순종하여 회개하고 처음 사랑을 회복하면 이기는 자가 되고 그렇지 않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패배하는 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전투적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다(물론 다른 성경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존재한다). 이러한 요한계시록 말씀의 경향을 따라 한국교회가 직면한 이 현실을 영적 전투의 현장으로 선포해 보자.

이기는 자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실제로 생명나무를 먹게 하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생명나무 열매가 가지는 의미로 '생명으로 충만한 하나님의 임재'의 지속적인 체험을 허락하시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영원한 구원으로 말미암은 충만한 생명에의 동참에 대한 표현과 다름 아니다. 이러한 약속은 22:2-4에서 미래적 종말의 시점에 주어지는 것으로 묘사된다. 결국 요한계시록 내에서 이러한 약속과 성취의 관계를 긴밀하게 보여준다. 이것은 이기는 자에게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심을 강변해주고 있다.

우리 한국교회의 성도들에게 이러한 영원한 구원의 소망을 바라보며 매일 매일 삶의 현장에서 주어지는 도전 앞에 굴하지 않고 패배하지 않고 이기는 자로서 살아가는 삶이 주어졌으면 참 좋겠다.

이필찬 /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신약학 교수·성경적종말론연구소 소장

이필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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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자를 위한 StormGain에서 촛대 패턴을 읽는 방법

초보자를 위한 StormGain에서 촛대 패턴을 읽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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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간단하게, 촛대 차트는 거래자가 자산의 가격 변화를 나타내는 데 사용합니다. 촛대는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단순한 꺾은선형 차트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합니다.BTC-USDT-candlesticks-chart-quadency

위의 차트에서 볼 수 있듯이 각 촛대는 문자 그대로의 촛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분, 1시간, 1일 또는 그 이상이 될 수 있는 거래 기간. 이것은 왼쪽 상단에 60(분)으로 표시된 1시간 양초의 예입니다.


촛불을 읽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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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서 볼 수 있듯이 빨간색과 녹색의 두 가지 색상이 있습니다. 양초가 빨간색이면 종가가 시가보다 낮습니다. 해당 거래 기간 동안 자산 가격이 하락했습니다. 양초가 녹색으로 바뀌면 자산 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종가가 시가보다 높았습니다.

색상 외에도 위의 나머지 시각적 요소를 분해해 보겠습니다.

몸체 : 몸체는 열린 범위를 나타냅니다. 즉, 종가와 시가의 차이를 나타냅니다.

심지 : 꼬리 또는 그림자라고도 합니다. 촛대 기간 내 자산의 최고가와 최저 가격을 보여줍니다. 심지가 없으면 시가와 종가가 최저가/최고가입니다.

최고가 : 상단 심지의 상단은 해당 기간 동안 거래된 최고가를 나타냅니다.

최저 가격: 해당 기간 동안 거래된 최저 가격은 하단 심지의 바닥으로 표시됩니다.

시가: 새로운 촛대 기간 동안 첫 거래가 발생한 가격입니다. 가격이 오르면 양초가 녹색으로 바뀌고 반대로 가격이 떨어지면 빨간색으로 바뀝니다. 종가

: 종가는 캔들 형성 기간 동안 마지막으로 거래된 가격입니다. 이 가격이 시가보다 높으면 양초는 녹색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빨간색이 됩니다.

알아야 할 주요 거래 패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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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대 차트를 사용하고 읽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패턴 인식은 종종 가격 방향, 추세 및 전반적인 모멘텀을 예측하는 데 사용됩니다. 하나, 둘 또는 더 많은 촛대로 만들 수 있으므로 아래에서 주요 약세 및 강세 패턴의 편리한 목록을 만들었습니다.

강세 패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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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관 : 망치는 촛대는 무엇입니까? 가장 쉽게 알아볼 수 있는 패턴 중 하나입니다. 망치처럼 이 패턴은 하락추세의 바닥에 긴 아래쪽 심지가 있는 촛대로 구성됩니다. 몸은 일반적으로 위쪽 심지가 거의 또는 전혀 없이 작습니다. 망치는 빨간색 또는 녹색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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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후: 강한 반전 추세와 잠재적인 가격 급등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 패턴은 높은 매도 압력을 보여주지만 같은 기간 동안 매수 압력이 가격 움직임을 통제했습니다.

모양: 거꾸로 해머와 해머의 유일한 시각적 차이점은 몸체 아래가 아닌 위의 긴 심지입니다. 거꾸로 된 망치는 빨간색 또는 녹색일 수 있습니다.

표시: 거꾸로 된 망치는 상승 추세의 잠재적인 시작을 나타내며 종료된 하락 추세는 구매자가 곧 통제권을 얻을 수 있음을 나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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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 이 패턴은 하락추세의 바닥에서 발생하는 두 개의 촛대로 구성됩니다. 첫 번째는 약세(빨간색)이고 두 번째는 녹색이고 다른 하나를 집어삼킵니다. 즉, 두 번째 양초 몸체가 이전 양초보다 큽니다. 종가와 시가 사이에 갭이 있어야 하지만 이 갭은 암호화폐 시장에서 거의 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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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후: 이 패턴은 구매 압력이 증가하고 구매자가 가격을 인상할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상승 추세가 시작됨을 나타냅니다.

모습: 피어싱 라인은 하락추세의 바닥에서 발생하는 긴 약세(적색) 양초와 긴 녹색 양초로 구성된 패턴입니다. 종가와 시가 사이에 갭이 있으며 두 번째 캔들의 종가가 약세 캔들 본체의 절반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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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후: 기간의 시작은 매우 약세를 보입니다. 그러나 양초 전체에 걸쳐 매수 압력이 증가하여 황소가 현재 가격에서 매수하는 데 관심이 있음을 나타냅니다.

모습: 모닝 스타는 하락 추세에서 세 개의 다른 양초로 구성된 패턴입니다. 첫 번째는 긴 약세 양초입니다. 두 번째 별인 별은 매우 긴 심지와 짧은 몸체를 나타내며 이전 종가 아래에서 마감됩니다. 세 번째 양초는 첫 번째 양초의 중간점 위에서 마감되는 긴 강세 양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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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후: 별은 현재 추세가 힘을 잃고 있다는 신호이며, 종종 세 번째 캔들이 상승 추세를 시작하면서 확인됩니다.

모양: 3명의 백인 군인 패턴은 하락세 내부에 3개의 녹색 촛대로 구성됩니다. 두 번째 및 세 번째 양초는 이전 양초의 몸체 내에서 열리고 그 위에서 닫힙니다. 양초에는 일반적으로 심지가 거의 없거나 전혀 없습니다.

표시: 이 패턴은 가격을 상승시키고 심지어 다가오는 가격 반전을 나타내는 강력한 구매 압력을 나타냅니다. 양초가 클수록 압력이 더 강해집니다.

약세 패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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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 교수형 남자는 망치와 같은 약세입니다. 일반적으로 작은 몸체와 긴 아래쪽 심지가 있는 상승 추세의 끝에 형성됩니다. 녹색 또는 빨간색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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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후: 이 패턴은 상승 추세의 약점을 나타내며 거래자들은 종종 이를 매도 신호로 연관시킵니다.

성상: 별똥별은 작은 몸체와 아래쪽 심지가 있는 하나의 촛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위 심지는 매우 길다. 매우 유사한 인버티드 해머와 달리 이 패턴은 상승 추세의 상단에서 발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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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후: 이 패턴은 상당한 상승 후 강력한 가격 거부를 나타냅니다. 슈팅 스타는 종종 약세 반전의 신호와 관련이 있습니다.

모습: 이 패턴은 두 개의 촛대로 구성됩니다. 첫 번째는 강세(녹색)이고 두 번째는 빨간색이고 다른 하나를 집어삼킵니다. 즉, 두 번째 양초 본체가 첫 번째 양초보다 큽니다. 종가와 시가 사이의 격차는 암호화폐에서 거의 볼 수 없기 때문에 이 패턴은 상승세의 상단에서 발생합니다.

징후: 이 패턴은 판매 압력이 증가하고 잠재적인 하락세가 시작되었음을 나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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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 저녁별은 새벽별과 정반대입니다. 상승 추세에 있는 3개의 다른 양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긴 강세 양초입니다. 다음 촛불인 별은 촛대는 무엇입니까? 매우 긴 심지와 짧은 몸체를 나타냅니다. 세 번째 캔들은 첫 번째 캔들의 중간점 아래에서 닫히는 장대 약세 캔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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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시: 별은 현재 추세가 강세를 잃고 있다는 신호이며 트레이더는 이를 포지션 매도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확인은 종종 하락세를 시작하는 세 번째 캔들에서 발생합니다.

모양: Three Black Crows 패턴은 상승세 안에 있는 세 개의 빨간색 촛대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및 세 번째 양초는 이전 양초의 몸체 내에서 열리고 그 아래에서 닫힙니다. 양초에는 일반적으로 심지가 거의 없거나 전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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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후: 이 패턴은 가격을 낮추고 다가오는 가격 반전을 발표할 수 있는 강한 판매 압력을 나타냅니다.

모양: Dark Cloud Cover 패턴은 이전 녹색 양초의 종가보다 높게 열리고 해당 양초의 중간점 아래에서 닫히는 빨간색 양초로 구성됩니다. 상승 추세에 나타나는 이 패턴은 일반적으로 새로운 고점을 생성합니다.

징후: 이 패턴은 두 가지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바로 후퇴 또는 현재 상승세의 적어도 끝입니다. 두 촛대는 무엇입니까? 시나리오 모두에서 거래자는 이 패턴을 매도 신호로 읽는 경향이 있습니다.

간단한 꺾은선형 차트와 달리 촛대형 차트는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며 거래자에게 매우 유용한 도구입니다. 그러나 물론 그것들은 독립적으로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종종 RSI 또는 이동 평균과 같은 기술 지표와 함께 사용됩니다.

위의 패턴은 가장 인기 있는 패턴이지만 유일한 패턴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고급 패턴에 대한 후속 게시물을 계속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최건수교수의 성경연구

요한계시록의 이름
요한계시록의 이름은 1장 1절의 증거와 성격에 따라 붙여진 것입니다.
헬라어 성경에는 ‘아포칼륖시스 요아누’(ΑΠΟΚΑΛΥΨΙΣ ΙΟΑΝΝΟΥ: 요한의 계시록)라는 표제어로 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저자와 기록연대
요한계시록의 저자는 사도 요한입니다. 본문 1장 1절이 요한의 저작설을 증거합니다. 또한 초대교회 교부들과 전승의 내용들도 함께 이를 지지하며 여러 가지 문체, 어휘 등도 복음서와 요한서신의 저자인 사도 요한의 저작설을 뒷받침합니다.
그리고 기록연대는 90년경으로 추정합니다. 요한 도미티안 황제의 폭정시대에 밧모섬으로 유배되어 갔습니다(1:9). 그곳에서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신비로운 미래의 경험을 하였으므로 본서를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기록목적
요한은 성도들에게 황제숭배를 배격하기 위하여 극단적인 경우가 임박하였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그는 사단이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여 성도들로 하여금 신앙을 버리거나 타협하거나 죽음을 택할 경우까지 설명하였습니다. 그때에도 신앙을 고수하며 최후승리를 위하여 싸울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즉, 전투적 지상교회의 역할을 감당토록 하였습니다.
사도 요한은 ① 자신의 본 것(그리스도의 환상), ② 앞으로 당할 교회의 혼란 (아시아 7교회), ③ 장차 될 일, 즉 환난, 재림, 천년왕국, 심판, 영원한 나라를 알려주며, 그리스도의 나라, 신천신지(新天新地)를 촛대는 무엇입니까? 사모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한 내용들이 이 책의 기록목적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주제와 중심사상
전투하는 성도, 교회, 하나님 나라는 요한계시록의 주제이며 중심사상은 ‘승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요한계시록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초대교회의 상황(1:1-3:22), 둘째는 칠 년 환난시대의 상황(4:1-18:24)과 셋째는 그리스도의 지상재림과 천년왕국, 백보좌 심판,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19:1-22:21)입니다.

첫째, 초대교회의 상황 (1:1-3:22)
■ 1:1-20까지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요한의 환상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가 요한에게 어떻게 임하였습니까?
(2)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기술하고 있습니까?
(3) 누가 요한에게 일곱 교회에 편지하라고 말씀하였습니까?
(4) 요한이 본 일곱 별과 일곱 촛대는 각각 무엇을 나타내는 것입니까?

Q.T.를 위한 신앙적 질문 -- “당신은 하나님의 환상이나 계시를 본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환상이나 계시를 보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2:1-3:22까지는 일곱 교회
(1) 일곱 교회 중에서 주님의 칭찬만이 있던 교회 둘은 촛대는 무엇입니까? 어디 어디 입니까?
(2) 2장 1절에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는 누구입니까?
(3) 2장 9절에 “자칭 유대인”이란 누구입니까?
(4) “죽도록 충성하는 성도”에게 주어지는 것은 무엇입니까?
(5) 2장 28절에 “새벽별”은 무엇입니까?
(6) 3장 1절에 “일곱 영”은 무엇입니까?
(7) 3장 7절에 “다윗의 열쇠”는 무엇입니까?

Q.T.를 위한 신앙적 질문 -- 당신이 다니는 교회는 주님의 칭찬이 있습니까? 책망꺼리는 무엇입니까?

둘째, 칠 년 환난시대의 상황 (4:1-18:24)
■ 4:1-5:14까지는 하나님과 어린양에 대한 환상
(1) 요한이 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모양은 어떠했습니까?
(2) 하나님의 보좌 가운데와 주위에 있는 네 생물의 형상을 설명하시오.
(3)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있는 책은 무엇입니까?
(4) (3)의 책의 일곱 인을 떼기에 합당한 이는 누구입니까?

Q.T.를 위한 신앙적 질문 -- 당신은 요한이 환상 중에 본 천국을 사모합니까? 천국에 갈 소망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갑니까?

■ 6:1-8:5까지는 일곱 인의 심판
(1) 6장 2절에 흰말과 그 말을 탄 자는 누구입니까?
(2) 6장 4절에 “붉은 다른 말”은 무엇입니까?
(3) 6장 5절에 “검은 말”은 무엇입니까?
(4) 6장 8절에 “청황색 말”은 무엇입니까?
(5) 6장 11절에 “흰 두루마기”는 무엇입니까?
(6) 하나님의 종 된 자의 표시는 무엇입니까?
(7) 7장 5-8절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12지파 중에 빠진 지파는?

Q.T.를 위한 신앙적 질문 -- 하나님의 백성 된 표시로서 당신은 무엇을 갖고 있습니까? 당신의 삶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합니까?

■ 8:6-11:19까지는 일곱 나팔의 심판
(1) 셋째 천사의 나팔과 함께 “횃불과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졌는데, 이 별의 이름은?
(2) 다섯째 천사의 나팔과 함께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은 무엇입니까?
(3) 9장 3절에 나오는 “황충”은 무엇이며 무슨 권세를 받았습니까?
(4) “아바돈” “아볼루온”의 뜻은 무엇입니까?
(5)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임한 재앙은 무엇입니까?
(6)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게 될 때 어떠한 일이 일어납니까?
(7) 천사가 갖고 있는 “작은 책”은 무엇입니까?
(8) 11장 2절에 “성전 밖 마당”과 “이방인”은 각각 무엇을 뜻합니까?
(9) 11장 3절의 “두 증인”, 4절의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는 각각 무엇/누구입니까?
(10) 11장 11절에 “생기”는 무엇입니까?

Q.T.를 위한 신앙적 질문 -- 당신은 현재의 삶에서 예수님의 증인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당신의 삶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까?

■ 12:1-14:20까지는 여자, 용과 두 짐승
(1) 12장 1절에 “해를 입은 한 여자”는 누구입니까?
(2) 12장 3절에 “한 큰 붉은 용”은 무엇입니까?
(3) 12장 5절에 여자가 낳은 “아들”은 누구입니까?
(4) 12장 16절에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는 무슨 뜻입니까?
(5) 13장 1절에 바다에서 나오는 한 짐승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6) 13장 11절에 땅에서 나오는 다른 짐승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7) 13장 16절에 “오른 손이나 이마에 받은 (짐승의) 표”는 무슨 의미입니까?
(8) 14장 1절에 어린 양과 함께 시온 산에 선 십 사만 사천의 성도는 어떤 표를 갖고 있습니까?
(9) 14장 8절의 “큰 성 바벨론”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10) 14장 18절에 “땅의 포도송이”는 무엇을 상징합니까?

Q.T.를 위한 신앙적 질문 -- 당신은 환난의 때에 누구에게 속한 사람이 되겠습니까? 그리스도입니까? 아니면 짐승 곧 적그리스도입니까?

■ 15:1-16:21까지는 일곱 대접의 심판
(1) 15장 2절에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란 누구입니까?
(2) 15장 5절에 “증거 장막의 성전”은 무엇입니까?
(3) 16장 5절에 “전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거룩하신 이”는 누구입니까?
(4) 16장 10절에 “짐승의 보좌”는 무엇입니까?
(5) 16장 16절의 아마겟돈은 현재 이스라엘의 어느 지명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Q.T.를 위한 신앙적 질문 -- 당신은 마지막 때의 심판을 피할 수 있습니까? 당신이 의지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 17:1-18:24까지는 바벨론 성의 멸망
(1) 17장 1절의 “큰 음녀”는 누구입니까?
(2) 17장 3절의 “붉은 빛 짐승”은 무엇입니까?
(3) 17장 3절의 짐승의 일곱 머리는 무엇입니까?
(4) 17장 11절에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어진 짐승”이란 무엇입니까?
(5) 18장 2절에 큰 성 바벨론의 운명이 어떻다는 것입니까?
(6) 18장 22절에 “나팔 부는 자의 소리가 결코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고. ”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Q.T.를 위한 신앙적 질문 -- 사단이 세상을 미혹할 때 당신은 그 미혹에 넘어가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까? 무엇을 의지하겠습니까?

셋째, 그리스도의 지상재림과 천년왕국, 백보좌 심판,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 (19:1-22:21)
■ 19:1-20:15까지는 마지막 심판
(1) 19장 7절의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란 무엇입니까?
(2) 19장 9절에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은 누구입니까?
(3) 19장 10절에 “대언의 영”이란 무엇입니까?
(4) 19장 11절에 “백마를 탄 자”란 누구입니까?
(5) 19장 13절에 “피 뿌린 옷”이란 무엇입니까?
(6) 19장 15절에 그의 입에서 나오는 “이한 검”(sharp sword)이란 무엇입니까?
(7)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둘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8) 천년이 차기까지 무저갱(無底坑)에 갇혀 있던 사단을 천년이 차매 그 옥에서 놓아 땅의 사방 백성을 미혹케 허락하시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9) 20장 11절에 “크고 흰 보좌”는 무엇을 하기 위한 것입니까?
(10) 20장 12절에 나오는 “죽은 자들”이란 누구입니까?

Q.T.를 위한 신앙적 질문 --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기를 바랍니까? 그 잔치에 참여할 권리는 무엇입니까?

■ 21:1-22:21까지는 성도들의 영원한 안식처
(1) 21장 1절에 “새 하늘과 새 땅”은 무엇입니까?
(2)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삶은 어떠합니까?
(3) 21장 9절에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란 누구입니까?
(4) 22장 14절에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란 누구입니까?
(5) 새 예루살렘 성 안에 거하기에 합당치 않은 자들은 누구입니까?

Q.T.를 위한 신앙적 질문 --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하심을 소망하고 살아갑니까? 그의 재림하실 것임을 증거하고 있습니까?

요한계시록의 핵심적 교훈은 ① 새 하늘과 새 땅, ② 그리스도의 재림 약속, ③ 심판의 공의로움과 엄준함입니다. 특히 22장 12-21절은 본 책의 결론이자 가장 큰 교훈입니다.

*생활적용과 기도(祈禱)
1. 주님! 저희도 요한이 본 계시와 환상을 보게 하옵소서!
2. 주님! 저희 교회로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와 같이 칭찬만이 있는 교회 되게 하옵소서!
3. 주님! 저희의 소망이 하늘에 있게 하시되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살게 하옵소서! 그러나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저희에게 주신 달란트를 잘 경영하는 자들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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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2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2. 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3. 14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4. 15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5. 16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6. 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7. 18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8. 19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9. 20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 헌금계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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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2월 6일부터 주일 4부예배(12:00)가 Good TV에 생방송됩니다. 오후 1시에 마치게 되며, 수어방송도 함께 진행합니다. 영상광고는 축도 후에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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